제 목 : 오늘의 시간 도둑 날나리 짓

어쩌다 오늘 시간이 나서 그냥 건들거리고 있습니다
그냥 정처없이 걸어보자 운동삼아 나왔는데 지하철역 두정거장쯤 설렁설렁 걸었습니다
늘 차로만 슝 다니던 동네라, 특히 아침시간에 다녀본 적 없는 동네라 익숙하면서도 생경하더군요
그냥 상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도 있고요
20년 넘게 살면서 처음 보고 느끼는 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 여기 도서관이 있었지 생각에 들어갔더니 도서관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 관할 평생교육관이군요
구립 도서관 회원카드를 보여주니 이거 말고 따로 회원가입해야한답니다
회원증 발급받고 서가 한바퀴 돌아보려다 첫 골목 첫 칸에서 눈에 확 띄는 책을 그냥 골랐습니다
로맹가리의 ‘죽은 자들의 포도주’
로맹가리 이름만 들어본 작가이고 아무 사전 정보없이 그냥 제목에 꽂혀 집어 대출했습니다
관내에서 보더라도 꼭 대출하라는 전국 사서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ㅎㅎㅎ
열람실까지 가기도 뭣한데 자유로운 좌석이 있어서 읽었습니다
집에서라면 열장도 못 읽을 걸 1/3쯤 읽고 반납하고 나왔습니다
평생교육관이란데가 방통대 학생들 전용인 줄 알았더니 서울 시민 대상인가보더군요
확실히 도서관마다 수요층이 달라서 그런지 소장 장서가 동네 구립도서관과 살짝 포커스가 다른 느낌입니다
세금 여태 마이 냈는데 효용감 좀 느꼈습니다

요 같은 블럭에 시립미술관 분관이 있어서 뭘 전시하나 쓱 들어와 봤습니다
특이한 전시회를 하긴 하는데 관람객이 딸랑 저 하나
돌아 나오다 보니 꼭대기층에 아트 라이브러리가 있대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왔습니다
우와 이렇게 멋진 곳에 사람이 달랑 한명 ㅎㅎㅎ
저랑 둘만 있는데 전망좋은 통창과 그 앞에 1인용 소파
간격도 뚝뚝 떨어졌는데 등받이 팔걸이 부분이 엄청 높아서 앉으면 머리만 보일 정도로 폭 안깁니다
책 대출은 안되고 여기서 보고만 가야한답니다
사람이 없어서 럭셔리 카페 전세낸듯이 늘어져 있다는...
책 두권 꺼내오긴 했는데 풍경 멍 중입니다
별 풍경도 아니지만...
여기도 무료 공간인데 세금낸 효용감 마이 즐기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살면서 존재만 알았던 이리 좋은 곳을 처음 체험해봤습니다
어딘지 묻지 마세요
저만 알고 이용할 거예요

이정도로 어딘지 딱 눈치 깐 분도 있겠지만 공간 독점을 위해 모른 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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