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53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80대 초반에 혼자되셨어요
아버지가 코가 석자는 빠져서
티비 앞에 앉아있는 걸 보면
꿀딴지 깨먹은 곰돌이 푸우가 생각나곤 했었는데
아버지 형제분들은 맨날 저한테 전화해서
아버지를 잘 챙기라고, 아 그럼요 그럼요. ㅈ가 잘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맨날 녹음기 틀어놓은것같이 대답하고
너무 대답을 잘하면 오히려 못미더운거 아시죠? ㅋㅋㅋ
그래서 한동안 아빠 형제분들이 자주 오셨어요.
물론 울 작은아버지 숙모 고모들은
올때 아빠 좋아하는 반찬도 해오시고
근교에 드라이브 가자고 해서 칼국수도 드시러 가시고 하는 센스있는 양반들이시지만
그래도 세번에 한번은
'집밥!', 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ㅜ.ㅜ
그것도 이거저거 준비할테니 꼭 집에서 드시라고 하면
아이 뭘 번거롭게 준비했니 이러면서 드시고 가시는거죠
좋아하시는 아이템들이 있어요
병어라거나 전어라거나 낙지라거나 ... 굴, 아 굴이 최고 입니다. 이 형제분들은.
그래서 제철음식을 아침에 다 준비해놓고 식탁에 차려 놓고 나가면
뜨겁게만 해서 드실 수 있게요
아빠랑 식사하고 얘기하다 가시는거죠
그전에 저나 제동생이 오면 인사하고 배웅해 드리구요
이와중에 고모들은 꼭 제동생한테 몹쓸 사상을 주입하고 가십니다.
응, 누나가 이제 엄마야. 누나 말을 잘 들으면 돼
아니 누나는 누나고 엄마는 엄마지. 이게 무슨 말씀???
이라고 동생을 보면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요.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불안해지는 순간이랄까.
아빠가 그러고 몇년 더 지내시는 동안
굴전을 진짜 많이 부쳤습니다 ㅜ.ㅜ
봄에는 병어, 겨울에는 굴전 ... 전집처럼 부치는 굴전말구요
쪄서 꼬치에 끼워서 부쳐서 양념장 끼얹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굴전 꼬치를
오십개씩 만들어놓고 ... 아버지가 재벌회장도 아닌데 대체 왜 ...
모나카도 많이, 모리나가 캬라멜도 많이 많이 많이 사놨던게
아버지 돌아가시고도 한 이년쯤 냉동실에 있어서
야금야금 다 먹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시간은 잘 갑니다
병어 조림을 하고 오븐에 전어를 굽고 굴을 꼬치에 끼던 시간은 지나갔고
또 인생에 뭐가 올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