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궁화는 도대체 어디로 (무궁화동산사건)


아래 벚꽃글이 있길래 제가 설명 담아왔습니다.

무궁화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간 것일까요?

무궁화 동산 사건이란 무궁화를 보급하여 민족정기를 살리려던 남궁억에 의해 전국적인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를 알게 된 일제가 되려, 무궁화 나무를 전부 없애도록 한 사건입니다.
무궁화 동산 사건의 전모(全貌)는 다음과 같다. 1933년 11월 2일 홍천 경찰서 사법 주임인 신현규(申鉉奎)가 시조사원(時兆社員)을 가칭 (假稱)하여 남궁 억을 방문하였다. 남궁 억은 시조 잡지를 팔며 무궁화 묘목을 사러 왔다는 신현규를 무궁화 묘포로 데리고 가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라는 것을 설명하며 무궁화시(詩)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사쿠라는 활짝 피었다가 곧 지지만 무궁화는 면연(綿延)히 피어나는 것처럼 한국 역사가 면연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사랑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국가문화상징 무궁화), 2006.,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사전'에는 아래와 같은 글도 있습니다.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2천여 년 전 중국에서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조 시대에는 온 국민으로부터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상, 의학상에 진중 (珍重)한 대우를 받았는데, 영국의 장미처럼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서서 이화(李花)가 왕실화로 되면서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 민족으로부터 차차 소원해진 것이다.

20세기의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면서부터 유지(有志)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 진작을 위하여, 글과 말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으로 그 수명이 잠깐이지만 무궁화만은 여름에서 가을에 거쳐서 3∼4개월을 연속 필 뿐 아니라 그 고결함은 위인 (偉人)의 풍모라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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