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조카에게 돈을 받아야 할까요

올해 대학 졸업한 조카와 유럽 다녀왔어요.
원래 혼자 가려고 오랫동안 계획한 여행이라
비행기, 호텔 모두 예약 마쳤는데 조카가 따라가고 싶다고
자기 엄마와 저를 졸랐어요.

저는 워낙 꿈꾸던 혼자 하는 여행이였지만
이제 조카 취업하면 같이 여행 못 다니겠지 싶어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ok했어요
어려서부터 친정 엄마 대신 제가 거의 돌보며 키워준 조카라
저와 워낙 친하기도 하고 아이 성정도 조용하고 차분해서
저와 잘 맞았어요

조카가 뒤늦게 제 비행편과 같은 비행기 예약하려고 보니
그새 100만원 넘게 올라 200만원 훌쩍 넘더라구요.
전 굳이 같은 비행기 타고 갈 필요 있느냐,
더 저렴한 비행기 검색해서 현지에서 만나자고 하니
직항 없는 도시라 혼자 장시간 비행에 경유까지는
무서워서 못 탄다고 하길래 혼자 그것도 못 하면 어쩌냐고
설득했지만 조카가 고집부려 결국 저와 같은 비행기 끊었어요

자기가 모은돈에서 100만원 정도 모자란다기에
자기 엄마에게 5월부터 알바해서 50만원 갚는 조건으로 빌리고
전 그냥 내주겠다며 50만원 줬어요.

여행경비는 호텔, 식비, 교통패스 심지어 조카 친구들 줄 선물까지
모두 제가 내줬습니다.
물가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곳 중 하나라 일행 하나 더 생긴게
제 예산보다 너무 많이 들었지만 제가 현지에서 사려고 했던거
1/4로 줄이고 전 교통패스도 안 끊고 하루에 2만보씩 걸어다니며
이제 성인이 된 조카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어요.

문제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터졌어요.
비행기가 경유지로 출발 했는데 새와 충돌했다며
이륙한지 20분만에 회항했어요.
공항에 다시 내려 짐 찾고 대기했는데 결국 캔슬.
이메일로 대체항공편 예약하라고 연락와서
항공사 앱으로 다음날 대체편 예약했는데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저만 티켓을 받고
조카는 티켓을 받지 못 했어요.

공항에서 8시간 기다리며 항공사 측에 동행자 귀국편도
마련해달라고 항의했지만 예약이 다 차서 안되고
한국 돌아가서 티켓 판매한 너희 여행사와 얘기하라는 대답만
무한 반복.
대체편 표를 못 받아 분노한 사람들이 공항에서 난동부리고
공항경찰까지 왔지만 소용 없었어요
여러분은 절대 터키항공 타지마세요.
악명이 높길래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당해보니
배째라고 나오는게 그냥 딱 양아치 수준이네요.

조카에게 내일 오후에 내 비행편과 최대한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는걸로 알아봐서 따로 가야겠다고 했더니
영어 한마디도 못 하는데 어떡하냐고 같이 가잡니다.
조카가 어문계열 졸업했는데 정말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더군요.
전 요즘 인문계 대학생들 그래도 영어 어느정도는 하겠지
싶었는데 이번에 보고 조카에게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깜짝 놀라고 걱정되었어요.
아시아권은 여행 많이 다녀봤지만
서구권은 처음이라 서양사람들 무섭다고 식당에 가도
사람들한테서 멀리 떨어진 자리만 고르더라구요.

결국 제 대체편 항공권은 그냥 날리고
160만원 주고 편도 구해서 겨우 돌아왔어요.
하루 더 체류하느라 부랴부랴 잡은 호텔도 20만원.
그 외 식비며 더 발생한 비용이 200만원입니다.

전 이번에 조카의 동행을 허락하며 여행 동행자라 생각했지
제가 책임지고 수발 들어야하는 대상이라고 생각 안 했어요.
그랬다면 제가 그토록 오랫동안 꿈꿨던 도시에
조카 아닌 그 누구도 데려갈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막상 여행가보니 조카가 저 없이는
콜라 한 잔도 못 시키고 저와 붙어 있으려고만해서
모든 수속이며 알아보는거 다 제가 뛰어다니고
식사 사오는거, 음료수 사다나르는거 다 제가 하느라
체력 소모도 더 많고 힘들었지만
이모가 되서 조카와 여행와서 틀어질 수는 없어서
정말 내색 안 하고 원하는거 다 들어줬어요.

잘 참고 즐겁게 지낸 여행이였는데 막상 그런 일이 생기니
공항에서 저 나이면 내가 보호자도 아니고
혼자 전세계 배낭여행도 다닐 나이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뻔히 한국으로 돌아갈 항공표를 손에 쥐고도
조카가 영어 못 하고 무섭다는 이유로 하루만에 200만원을
쓰려니 정말 속상하더라구요
게다가 한국와서 여행사에 문의해보니
전 대체표가 있는데도 안 타서 노쇼 처리되어 4만원 환불이 전부.
조카는 84만원 환불 해준다고 합니다.

제가 여동생이였다면 조카에게 이모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네가 알아서 오라고 하거나 제 항공권 일부라도 부담했을거예요.
그런데 처리 결과를 듣고도 조카는 자기 엄마에게 빌린 돈이
늘어난 것만 걱정하고 제 항공권 값은 전혀 신경 안 쓰네요.

솔직히 일이 이렇게 되서 이모한테 너무 미안한다는 얘기만
들었어도 어차피 일이 이리 된거 어쩌겠냐 당분간은
속이 쓰려도 넘어갔을거예요
그런데 마지막에 추가로 잡은 호텔에서 자고 출발하던 날
오늘은 조식뷔페 안 먹냐 물어보고
방콕 공항에서 경유할 때 타이 마사지 받고 가자던
조카를 생각하면 끝까지 평정을 잃지 않고 어른 노릇만 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일단 조카에게 네가 환불 받을 금액을 혼자 다 가져갈지
이모와 나눌지 엄마와 상의해서 알려달라고 했는데
천만원 가까이 쓰고 와서 조카에게 마음까지 상하니
너무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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