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혼자 가려고 오랫동안 계획한 여행이라
비행기, 호텔 모두 예약 마쳤는데 조카가 따라가고 싶다고
자기 엄마와 저를 졸랐어요.
저는 워낙 꿈꾸던 혼자 하는 여행이였지만
이제 조카 취업하면 같이 여행 못 다니겠지 싶어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ok했어요
어려서부터 친정 엄마 대신 제가 거의 돌보며 키워준 조카라
저와 워낙 친하기도 하고 아이 성정도 조용하고 차분해서
저와 잘 맞았어요
조카가 뒤늦게 제 비행편과 같은 비행기 예약하려고 보니
그새 100만원 넘게 올라 200만원 훌쩍 넘더라구요.
전 굳이 같은 비행기 타고 갈 필요 있느냐,
더 저렴한 비행기 검색해서 현지에서 만나자고 하니
직항 없는 도시라 혼자 장시간 비행에 경유까지는
무서워서 못 탄다고 하길래 혼자 그것도 못 하면 어쩌냐고
설득했지만 조카가 고집부려 결국 저와 같은 비행기 끊었어요
자기가 모은돈에서 100만원 정도 모자란다기에
자기 엄마에게 5월부터 알바해서 50만원 갚는 조건으로 빌리고
전 그냥 내주겠다며 50만원 줬어요.
여행경비는 호텔, 식비, 교통패스 심지어 조카 친구들 줄 선물까지
모두 제가 내줬습니다.
물가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곳 중 하나라 일행 하나 더 생긴게
제 예산보다 너무 많이 들었지만 제가 현지에서 사려고 했던거
1/4로 줄이고 전 교통패스도 안 끊고 하루에 2만보씩 걸어다니며
이제 성인이 된 조카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어요.
문제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터졌어요.
비행기가 경유지로 출발 했는데 새와 충돌했다며
이륙한지 20분만에 회항했어요.
공항에 다시 내려 짐 찾고 대기했는데 결국 캔슬.
이메일로 대체항공편 예약하라고 연락와서
항공사 앱으로 다음날 대체편 예약했는데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저만 티켓을 받고
조카는 티켓을 받지 못 했어요.
공항에서 8시간 기다리며 항공사 측에 동행자 귀국편도
마련해달라고 항의했지만 예약이 다 차서 안되고
한국 돌아가서 티켓 판매한 너희 여행사와 얘기하라는 대답만
무한 반복.
대체편 표를 못 받아 분노한 사람들이 공항에서 난동부리고
공항경찰까지 왔지만 소용 없었어요
여러분은 절대 터키항공 타지마세요.
악명이 높길래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당해보니
배째라고 나오는게 그냥 딱 양아치 수준이네요.
조카에게 내일 오후에 내 비행편과 최대한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는걸로 알아봐서 따로 가야겠다고 했더니
영어 한마디도 못 하는데 어떡하냐고 같이 가잡니다.
조카가 어문계열 졸업했는데 정말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더군요.
전 요즘 인문계 대학생들 그래도 영어 어느정도는 하겠지
싶었는데 이번에 보고 조카에게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깜짝 놀라고 걱정되었어요.
아시아권은 여행 많이 다녀봤지만
서구권은 처음이라 서양사람들 무섭다고 식당에 가도
사람들한테서 멀리 떨어진 자리만 고르더라구요.
결국 제 대체편 항공권은 그냥 날리고
160만원 주고 편도 구해서 겨우 돌아왔어요.
하루 더 체류하느라 부랴부랴 잡은 호텔도 20만원.
그 외 식비며 더 발생한 비용이 200만원입니다.
전 이번에 조카의 동행을 허락하며 여행 동행자라 생각했지
제가 책임지고 수발 들어야하는 대상이라고 생각 안 했어요.
그랬다면 제가 그토록 오랫동안 꿈꿨던 도시에
조카 아닌 그 누구도 데려갈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막상 여행가보니 조카가 저 없이는
콜라 한 잔도 못 시키고 저와 붙어 있으려고만해서
모든 수속이며 알아보는거 다 제가 뛰어다니고
식사 사오는거, 음료수 사다나르는거 다 제가 하느라
체력 소모도 더 많고 힘들었지만
이모가 되서 조카와 여행와서 틀어질 수는 없어서
정말 내색 안 하고 원하는거 다 들어줬어요.
잘 참고 즐겁게 지낸 여행이였는데 막상 그런 일이 생기니
공항에서 저 나이면 내가 보호자도 아니고
혼자 전세계 배낭여행도 다닐 나이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뻔히 한국으로 돌아갈 항공표를 손에 쥐고도
조카가 영어 못 하고 무섭다는 이유로 하루만에 200만원을
쓰려니 정말 속상하더라구요
게다가 한국와서 여행사에 문의해보니
전 대체표가 있는데도 안 타서 노쇼 처리되어 4만원 환불이 전부.
조카는 84만원 환불 해준다고 합니다.
제가 여동생이였다면 조카에게 이모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네가 알아서 오라고 하거나 제 항공권 일부라도 부담했을거예요.
그런데 처리 결과를 듣고도 조카는 자기 엄마에게 빌린 돈이
늘어난 것만 걱정하고 제 항공권 값은 전혀 신경 안 쓰네요.
솔직히 일이 이렇게 되서 이모한테 너무 미안한다는 얘기만
들었어도 어차피 일이 이리 된거 어쩌겠냐 당분간은
속이 쓰려도 넘어갔을거예요
그런데 마지막에 추가로 잡은 호텔에서 자고 출발하던 날
오늘은 조식뷔페 안 먹냐 물어보고
방콕 공항에서 경유할 때 타이 마사지 받고 가자던
조카를 생각하면 끝까지 평정을 잃지 않고 어른 노릇만 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일단 조카에게 네가 환불 받을 금액을 혼자 다 가져갈지
이모와 나눌지 엄마와 상의해서 알려달라고 했는데
천만원 가까이 쓰고 와서 조카에게 마음까지 상하니
너무 힘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