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갔어요 집을 못 구해서 대형 평수 시부모님 댁에 들어갔는데 시부모님 눈치 보는 것도 힘든데 그때 애들 나이가 4살 6살 이랬거든요 큰애는 쪼끔 말을 알아듣는데 작은 애가 컨트롤이 안됐어요
그래서 아래층 걱정을 되게 많이 했는데 다행인 건 아래층 아줌마는 그래도 내가 인사하면 마지못해 웃으면서 인사는 받아 주더라구요
그런데 아래층 아저씨가 전형적인 조폭 이미지였어요 깍두기 스포츠머리에 금체인 목걸이에 배바지 클러치.
인사도 못하겠더라고요 무서워서요.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애를 유모차에 태워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하필 이 아저씨가 아래층에서 탄 거예요
순간 나도 모르게 우리 애한테 누구야 아저씨한테 인사드려 시켰어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나름 인사받으려는 자세를 취하고요
근데
애가 아저씨를 쭉 보더니 흥 하고 고개를 휙 돌려요.
당황해서 더 큰 소리로 누구야 아저씨한테 인사드려야지 하니까
하니까 애가 이번에 더 크게 흥 하면서 고개를 돌려요
이젠 저도 거의 제 정신이 아니고 반미친상태에서 아주 아주 큰 소리로 누구야! 아저씨한테 인사드려야지!!
그런데도 여전히 흥하고 고개를 돌리더라구요
그리고 일층 문이 쫙 열렸는데 아저씨가 나가기 전에 갑자기 우리애를 보고 이러는 거에요
음...지금 니가 나한테 이럴 처지는 아니지 않니?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럼요 우리 아무개가 이럴 처지가 아니죠. 했는데 생각할수록 너무 웃기더라구요. 시부모님도 남편도 이야기 듣더니 깔깔깔 웃고요.
아무튼 생각보다 무서운 아저씨는 아니었고요.
그렇게 거기서 무사히 1년 살고 나왔어요.
그리고 다음 이사 간 집은 역시나 고층이었고 이번에도 둘째 뛰는 거 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워낙 툭툭툭 뛰는 타입이라..
아래층을 봤는데 아저씨는 저녁 늦게 들어오는지 보기 힘들었고 아주머니를 봤는데 아주머니가 분위기 싸해서 말도 못 붙이겠더라구요
자녀들은 안 보이고 한 40대 후반 쯤 되는 부부였는데.
어쨌든 간에 마음을 졸이면 늘 살다가 맛있는 거 생기면 두어번 문고리에 걸어놨어요. 맛있게 드세요 메모 쓰고 올라오고 이런 식으로요..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가 드디어 저희 집 초인종을 누른거에요 그때 한참 우리 애들 놀고 있었거든요
아 그래서 드디어 올라오셨구나 죄인처럼 문을 열어 드렸어요 그리고 열자마자 정말 죄송합니다.애들이 너무 뛰죠
하니까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아니 그것 땜에 올라온 게 아니라 지금 물이 새고 있어요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당장 가서 봤더니 진짜 물이 새드라구요
관리사무소 당장 전화했더니 지금 이 아파트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있다고. 원래 이 아파트가 물이 자주 센다네요
안 그래도 애들 땜에 죄인인데 한시라도 빨리 고쳐 드려야 될거가 돼 가지고 옷 돈 줄 생각으로 아저씨 오라 그래서 재빨리 고쳐 줬거든요.
실제로는 아저씨가 일감이 연속 생기니 좋아서 우리집은 깍아줬어요.
그날 바로 고친걸 아주머니가 며칠 있다가 아신거예요
이렇게 성의 있게 빨리 해 줄 줄 몰랐다고 완전 감동하더니 커피 마시라고 놀러 오라고 해서 갔어요.
그랬는데 알고 보니 강남에서 애들 대학까지 다 보내고 이사 오신 분들이셨고
애들은 맨날 늦게 들어오고 아저씨도 늦게 들어오시는 편인데
아저씨가 층간소음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잠잘 때도 누구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둔한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애들 뛰라 그러더라구요
생각보다 참 좋은 분들이었는데 이분들도 1년 있다가 이사 가버리셨어요
그리고 저희도 그 다음 해에 1층으로 이사 갔고요.
층간소음 때문에 얽히긴 했어도 참 좋은 이웃들이었어요 아래층 분들 아직도 기억납니다 우습기도 하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고 피해받는 것도 되게 싫어하고 또 피해 주면서도 당당하고 또 그렇더라구요 또 인간미가 좀 적어지는 느낌도 들고 삭막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