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촌 초둥학교를 다녔죠. 학교를 마치고 내려오면
봄날의 햇살이 따스했던 기억이 나요.
학교가는길에 주택들은 일제시대 지은 2층집들이 주르륵 있었어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안가본지 40년이 흘렀으니까요.
군항제 철이 되면 온갖 상인들로 도시가 들썩거렸어요.
북치고 장구치면서 약을 파는 아저씨를 하교길에 한없이 서서 구경하기도하고, 귀신의 집도 들어가보고, 버스 탈 돈으로 핫도그를 사먹기도 하고, 초등 어린애가 얼른 집에는 안가고 이리저리 구경을 했었나봐요. 집에 오시는 피아노 선생님은 절 보기 힘드셨어요. 다른 형제들만 레슨하고 가시고
전 저녁때 부모님께 엄청 혼났죠. 하지만 그 다음에도 전 항상 그랬어요.
어린 맘에도 그 시기는 온통 하늘이 핑크색인 느낌이었어요.
책가방을 매고 터덜거리며 걸어오면서 세상은 아름다운거라는걸 막연히 느꼈어요. 동시에 숙제같은건 왜 있는걸까하는 답답함도 동시에 느꼈죠.
로터리에 있는 만둣집은 엄마가 자주 데리고 가주셨어요. 참 맛있었는데 아직도 있을려나요.
조용한 이쁜 언니가 주인 아저씨를 도왔던것 같아요.
해군아파트,AID아파트에서 10분? 정도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바닷가가 나왔어요. 아직도 이 아파트들이 있을까요?
엄마를 따라 가끔 가서 새우는 아니고 뭔가 갑각류인데 쪄서 껍질을 까먹으면 단맛이 물씬 나는... 이름을 모르겠는데 그걸 자주 먹었었어요.
엄마가 안계시니 물어볼수가 없군요.
내려가는 길에 구멍가게가 있어서 꼭 들려
라면, 사탕, 과자를 사왔죠. 무뚝뚝한 머리를 까맣게 염색한 아주머니가 주인이었어요.
가끔 지금도 꿈에서 그 길을 걸어가는 꿈을 꾸기도 해요.
해군사관학교를 차로 드라이브가면
핑크색 세상으로 빨려들어가는 황홀함을 느꼈던것 같아요.
창원으로 가는길은 구불거리는 길이어서 멀미를 하기도 했어요.
언젠가는 진해를 꼭 가봐야지하먼서 살았는데
40년동안 못가봤어요. 가끔 티비에 군항제가 나오면 내 기억속의 거리를 찾는데 잘 안보여요.
아무래도 직접 가서 택시를 도촌 초등학교에서 내려서 추억을 찾아 헤메봐야 할 것 같아요.
서울에서 진해를 가려면 어찌가야하는지 검색부터 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