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악의 평범성이 만연한 사회 - 수치심 상실의 시대 -

악의 평범성이 만연한 사회 
- 수치심 상실의 시대 -

이균태 신부
부산교구 김해본당

  “애들이 놀러 갔다가 죽었는데, 교통사고랑 다를 게 뭐가 있어요? 무슨 의사자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여기저기에서 막말이 튀어나왔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외침, 2023년 3월 1일로 1,585번째다.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진행되는 시위를 방해하는 이들은 “내 딸이 일본군 위안부였어도, 일본을 용서하겠다!”는 폭언과 소음 공격을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뻔뻔하게 행하고 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발생한 참사 앞에서 유가족들에게 “9년 우려먹고 이제 깜장 리본 달고 얼마나 우려 먹을까?”, “시체팔이 족속들”이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망언들이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막말, 망언들은 뻔뻔함의 극치, 수치심의 상실을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 현상들이 온 나라 곳곳에 흉흉하다. 선과 악, 그 기준이 모호해진 지 오래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기준, 정의와 불의 역시 마찬가지다. 진영 간의 진흙탕 싸움 한가운데에서 각자의 진영에 유리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가 갈라지는 것이 예삿일이 되어 버린지도 오래다. 그 기준들이라는 것이 상대주의의 넘실거리는 파도에 휩쓸려, 선, 올바름, 정의는 지극히 사사로운 의견이라고 치부되어 버리거나, 묵살당해 버리는 현실에서 ‘각자도생, 내로남불’이라는 조악하기 그지없는 말들이 진리인 양,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생명유지’에만 매달리며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1963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였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 권력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을 두고,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마치 기계처럼 자기가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국가의 명령이나 임무를 당연시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가담하게 될 수 있다. 관료적인 효율성, 권위에 대한 복종, 물질 만능에 따른 경제적인 효율성, 국익·반공·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악행에 가담하거나 침묵할 수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공습으로 “돈! 돈! 돈!” 하는 돈 놈들과 나밖에 모르는 나쁜 놈들이 철철 흘러넘친다. 게다가 뻔뻔함의 극치, 수치심의 상실, 그리고 악의 평범화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시대의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타인의 고통이 결국은 나의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깨어있는 시민의식, 그리고 공감하는 연대의식을 갖추는 데서 찾아야 한다. 우리 시대의 영성,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연대의식의 또 다른 말이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에페 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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