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세번은 꼭 가는 강릉은 저에겐 언제나 뽠타스틱한 여행지입니다 :)
가성비, 편의성, 오감만족, 과거와 현재 &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곳,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시간이 넉넉한 곳,
어제 여행은 오페라덕후님의 추천 공연 덕분에 급하게 다녀왔어요 ^^
배보다 배꼽이 큰(공연티켓 1만원, ktx 티켓 왕복 6만원 ㅎㅎ) 나들이였지만 그 어느 비용도 아깝지 않은, 본전을 열배 이상 뽑은 나들이였죠
일단 이 모든 감사를 오페라 덕후님께 바치고 저의 동선을 따라 저도 다시 한번 어제의 여행을 돌아봅니다
이하는 편하게 음슴체로 쓴 점 이해해 주셔요~
1. 가깝고 편하다
집앞이 2호선 전철역이라 아침에 할 일 다하고 운동도 하고 9시 넘어 여유있게 나옴
집에서 신발신고 문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강릉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2시간 반 (와우!)
그러나 열차가 상대적으로 최신식이라 휴대폰 충전도 되고 쾌적 깔끔, 책 읽다 창밖 보다 음악 듣다 보면 어느새 도착
좌석이 둘둘이라 우등과 일반석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음.. 그래봤자 부산 여수 목포 등지로 가는 것에 비하면 반값 혹은 그 이하 ㅎㅎ
2. 강릉에 혼자가면 항상 하는 것들
- 점심시간에 도착, 순두부 좋아하는 저는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하니 택시타고 초당마을로~
역에서 거리도 가까워 5000원 정도의 비용으로 택시를 타고 10분 안짝이면 도착
하얗고 고소하고 뜨끈한 순두부를 바글바글 끓여서 고등어 조림 큰 덩어리와 맛난 반찬들 주욱 늘어놓고 혼자서 맛나게 먹음 ^^
- 근처가 허균생가라 배도 꺼뜨릴겸 가서 산책, 언제가도 따뜻하고 푸근하고 한적한 나즈막한 생가는 정겨움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자연친화적인 집 마당의 흙냄새를 맡으며 새소리 빼고는 들리지 않는 조용한 마당에 서서 새파란 하늘도 쳐다보고..나무 꼭대기 까치도 바라보고 오래되서 빤딱거리는 좁지만 정겨운 쪽마루에 앉아 집안과 흙담장 옆 화초들도 둘러보고..낮은 문턱 넘어 빈 부엌도 들여다보고 어릴적 드나들던 외할머니댁 부엌인양 할머니와 외숙모들도 떠올려 보고…
매화나무 네 그루에 소박하고 단정한 매화꽃이 야무지게 피어있어 바라보고 사진찍고 향도 맡아보고..
- 집을 나와 바로 옆 경포호로
세월만큼이나 굵어진 소나무숲 사이를 걸으며 맑은 공기와 솔향으로 폐를 씻어냄 ^^
바다가 코앞이지만 바다와는 다른 커다란 호수가 뙇, 한가운데 바위 위 정자를 바라보며 봄햇살에 윤슬이 가득한 호수에 먹이찾느라 바쁜 오리들 구경하며 경포대에 올라가 대자로 누워도 보며 걸어서 한바퀴
봄이긴 하지만 아직은 마른 가지에 초록보다는 누런색이 압도적인 길가 풍경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가지마다 새싹과 꽃망우리가 수백개 수천개 다닥다닥 맺혀있음
연두색 새싹에 봄꽃 만발해야만 이쁘다 탄성이 나오는 건 아닌가봄…한번 건드리면 도미노처럼 주르륵 피어날 꽃들과 새싹들이 준비 땅!하고 움츠리고 있는 그 에너지만으로도 나는 이미 봄의 거대한 기운에 압도당함
50년을 넘게 살다보니 전에는 보지 못하는 것도 보게 되는 나 자신을 보게 됨 (기특~ 뿌듯~)
천천히 걸으며 봤으니 이번엔 자전거로 달려봄
1시간에 5천원 내고 휙휙 호수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걷기엔 커보이는 호수가 몇바퀴 돌만한 작은 호수가 됨
- 자전거를 반환하고 몇발자국 걸으니 바다다~~!
제가 강릉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래가 고운 해변이 꽤 길고 넓기 때문
저는 바다에 가면 물놀이보다는 맨발로 모래밟기를 제일 좋아하는데 날씨는 좀 추웠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안할 수는 없으니 바로 신발 벗고 사천해변부터 경포해변을 지나 강문해변까지 열심히 뿌득뿌득 모래를 밟아가며 갈매기들이 놀다간 자리를 걸어줌
길 바닥이 탄탄하지 않아서 균형을 잡아가며 힘을 줘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뛰고싶어도 맘대로 안되는 모래알들을 문대다 보면 나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아이의 짖궂음 같다는 느낌도 받음
지난 겨울의 강릉 바다는 에메랄드 빛의 잔잔한 봄바다 같더니만 봄으로 접어든 어제의 바다는 제 키만한 파도를 끊임없이 밀어내는 차갑고 거친 겨울바다 그 자체였음
시원스레 힘넘치는 파도를 보며 세상에 쓸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머리 속에 하나씩 적어봄
- 바닷바람, 호숫바람에 시달린 몸 좀 쉬게 해주려고 강문해변 2층 북카페로 감
인별용 인테리어나 화려한 디저트와 음료를 내세운 카페보다는 조용하고 편안한 곳을 선호하는 저
통창 너머 바다를 보며 넉넉한 잔 가득채운 찐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조용한 카페주인과 어울리는 조용하나 밝은 분위기의 보사노바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책들로 벽을 채운 공간 속에서 얼얼하고 노곤해진 다리에게 휴식을 허함…그러다 한 30분 졸기도 ㅎㅎ
책도 읽고 바다도 보며 쉴만큼 쉬고 공연장으로 감
3. 롯시니의 ‘슬픔의 성모(stabat mater)’
성악, 오페라에 관해서는 신생아 수준인 저지만 어제는 너무 행복했음
너무 행복해서 세번이나 울컥 눈물을 흘려버림
내용과는 달리 중간중간 경쾌하고 힘이 넘치는.. 하지만 듣고 있으면 가슴이 터질듯하고 엉엉 울고싶어지는 이상한 경험…
안봤으면 후회할뻔, 오페라덕후님 아니었으면 들어볼 생각도 안했을 것을… 오덕님 한 사람 인생에 큰 기쁨을 주셨습니다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사족 1
카카오택시로 이동하며 만난 한 기사님이 강릉 택시들 중에 전기차들이 꽤 늘지않았냐는 저의 호기심과 차 속 어색함을 바꿔보려는 데서 나온 저의 질문에 어찌나 친절하고 조목조목 대답해 주시는지 옛날이야기 듣듯 재미있게 들어며 왔음
몰랐던 사실도 알고… 작년 가을부터 강릉 택시들 사이에 전기차가 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전기차만 택시기사들이 의무적으로 지켜야하는 휴일제에서 제외되는 걸로 강릉의 교통관련 법이 바뀜
이틀 일하고 하루 쉬어야 하는데 전기차는 쉬지 않아도 되니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들이 전기차로 바꾸기 시작했고 그런 이유로 멀쩡히 때가 되면 그 의무를 핑계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든 병원엘 가든 일볼 수 있던 사람들까지 눈치보며 일하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지금은 너도나도 전기차를 몰게 되었지만 전기차에게만 주던 혜택이 없어지고 의무휴일 자체가 없어짐 (69시간이 떠오르는 한결같음)
그로 인해, 돌아다니는 택시는 많아졌지만 요즘은 매일 일해서 번 돈이 이틀 일하고 하루 쉬며 벌 때보다 적음 (워라벨이 깨진 셈)
거기에 더하여 전기차에 대한 장단점도 어찌나 차분하고 재미있게 잘 설명해 주시는지 10분 거리가 원망스러웠을 정도
그 친절함과 깔끔함과 목적을 방해하지 않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차에서 내리고 바로 운행 리뷰에 별 다섯개 드렸음!
사족 2
* 귀가 길에 잘못한 점 - 공연장과 역 사이가 멀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밤에 거기서 차를 잘 잡아타고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서울행 막차로 예약했으나 차없는 밤이라 순식간에 도착하여 탑승까지 한시간도 더 남음
원래 예매한 시간 말고 한시간 전 것도 예매해 놓았으면 뒤에 것 취소하고 타고 갔던가 아님 바로 시간 바꿔서 구매하고 탔으면 되었을 것을…그생각도 못하고 역에서 한시간 넘게 기다리다 탑승 (물론 저란 사람은 어디에 놔도, 시간 때우는 일엔 특화된 사람이라 문제는 없었음)
* 귀가 길에 잘한 점 - 예정대로라면 서울역에 12시 반 넘어 도착이라 꼼짝없이 택시를 타야했던 상황인데 바로 전 역에서 도착안내 방송을 듣다가 갑자기 번쩍 머리 속 전구가 켜지며 여기서 내리면 마지막 전철을 탈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잽싸게 내려 전철 타고 예정보다 40분 일찍 집에 도착!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걱정도 아끼고 ㅎㅎ 나의 순발력을 칭찬 ~ 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