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이는 마지막에 자살을 택하죠. 드라마 상으로 문동은은 자살에 실패하지만, 실제로 박연진이 꿈이었던 문동은은 죽었어요.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문동은은 박연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동은이 됩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았지만 다시 태어나는 셈이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문동은이 주여정의 복수를 돕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겠죠. 그렇다면 주여정의 복수가 끝났을 때, 주여정은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주여정의 삶도 끝은 자살이 예정된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강영천이 무기수라는 사실은 희망적이네요. 주여정이나 문동은은 강영천을 죽이는 것 보다는 오래오래 살려두며 괴롭힐 테니까요. 죽음은 그에게 그야말로 너무 "페어 플레이 같은데요, 여러분." 정의롭지 못한 자에게 정의로운 결말이라니 그건 축복이죠. 그런 축복을 내려줄 수는 없죠.
여기서 잠깐, 16편에 나온 이모님 구합니다, 라는 문자. 교도소 밖 강현남이 대체 주여정의 복수를 돕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거기에 대한 답은 이미 드라마에서 매우 매우 매우 설명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여정이 재소자의 여동생(아마도 그 여동생에게 불을 지른 남자친구를 상해 폭행한 이유로 들어왔을)을 치료해 주는 것으로 재소자의 마음을 사고 능력을 사고, 그 재소자를 움직여 강영천을 폭행하죠. 그 재소자가 출감하면 또 다른 누군가, 또 다른 누군가... 강영천을 살려놓고 두고두고 괴롭힐 수 있을 나의 폭력의 대행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감옥밖 누군가를 움직여야 하니까요. 당연히 강현남은 복수에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참으로 애매한 문제, 하도영.
하도영이 무정자증이라는 설까지 나도는 이유는 하도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하도영은 나이스한 개새끼지만, 그 개새끼라는 설정을 뒤로 해 두고, 하도영이라는 인물만 딱 놓고 봤을 때 "태어났을 때부터 흑돌을 양보받은" 사람이죠. 어렸을 때는 양보 받은 것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을 테고, 어느 순간 인생의 흑돌과 백돌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도 자신의 손에 것이 너무 당연해서, 그 것을 잃는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조차 모르는. 이건 뭔가 투쟁과 쟁취의 영역이 아니에요. 그냥 내 것이죠.
살다보면 드물지 않게, "내 것"을 아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나라는 범위가 넓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엄청난 성인들은 원수도 사랑하라잖아요. 그 범위까지 가는 것은 아니라도,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수 있는 부모, 연인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자식이나 연인이 나의 확장형이라서 그래요. '내 것' 이라고 쓰지만 실제로는 '나' 인거죠.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를 구성하는 무언가' 라고 해야하나.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도영의 예솔이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의 확장형이에요. 예솔이의 생부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솔이가 '내 것' 이라는 것이 중요하죠. 태어나면서부터 흑돌을 양보받아 삶의 모든 것이 '유리하며 쉬웠'던 하도영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쉬웠고, 거기서 확장된 나를 사랑하며 지키는 것도 쉽습니다. 아내 박연진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나의 아내, 내 것' 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지키듯 아내를 지켜요. 박연진이 무슨짓을 했는지를 다 알면서도 그를 버리기 이전에 교정하려 애쓰는 것은 박연진의 삶을 지켜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아내'를 지키고 나를 지키려 하는 것이죠. 이건 마치, 내 몸의 어딘가가 고장이 났을 때 그것을 치료하려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위암이 발생했는데, 그 암덩이를 잘라내지 않으면 암이 퍼져나가 내 몸 전체를 잠식해 나갈테니까요. 하도영에게 박연진은 위이고, 박연진의 행위는 위에 발생한 암입니다. 그 암을 잘라내기만 하면 기능이 좀 떨어진 위라도 안고 갔을 거예요. 15화에서 학폭 피해자인 소희의 유가족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는 게 치료 행위인 거죠. 그 위가 암을 떨어내는 것을 거절했고, 결국 하도영은 위 절제술을 선택하죠.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 차원에서, 예솔이는 고장나지 않은 장기이고, 그 예솔이에게 달라붙을 가능성이 있는(그래서 예솔이를 병들게 하고 결국 하도영까지 망가트릴 수도 있는) 전재준을 잘라내는 겁니다. 그에게는 살인이 아니라 살균인거죠.(그래서 개새끼....) 전재준을 죽인 건 박연진과 불륜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솔이에게 접근했기 때문이에요.
삶의 동인이 나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은. 13화에서 주여정과 하도영이 바둑을 두며 하는 대화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보여주죠. 주여정은 문동은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복수를 돕습니다. 하도영은 문동은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복수를 말리라고 해요. 그 복수의 대상이 박연진인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동은의 삶의 동력은 외부에 있어요. 복수가 끝났을 때는 살 수가 없는 거죠. 문동은이 끝내 자살을 택한 것처럼. '나' 가 없어요. 사실 문동은은 고등학생때 죽었죠. 문동은이라는 '나'는 죽었어요. 그걸 모르는, 여전히 '나'가 존재하는 하도영은 '나'를 지키라고 말하는 거고, 하도영과 비슷하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인생이 편의점 같이 간편하고 단순했지만 아버지가 죽는 순간에 '나'가 죽어버린 주여정은 하도영의 마음도 문동은의 마음도 이해를 합니다. 삶이 내부에서 기능하느냐 외부에서 기능하느냐의 문제죠.
전재준은 박연진에 대한 태도가 명확해요. "그럼 엄마 쪽은 손절" 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말하죠. 전재준역시 자기애가 충만한 개새끼인데, 전재준의 자기애는 폭이 좁아요. 그야말로 나만 중요하죠.
박연진 역시 나만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박연진은 하도영도 하예솔도 '나'라고 인식하지 않아요. 박연진이라는 '나'를 꾸며주는 화려한 악세사리, 그야말로 글로리, 후광인거죠. 다치든 말든 상관없고 그들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이라는 것이 있는지 인지도 못할 걸요. 박연진이 전재준과 불륜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연진은 어쩌면 예솔이가 전재준의 아이임을 알면서 낳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의 아이를 낳은 나를 여전히 떠받들고 사랑해주는 남편을 보고 싶은 욕망인거죠.
전 드라마를 두번 세번 보는 걸 좋아해요.
처음 볼 때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느라 바빠 놓쳤던 복선과 작가가 깔아놓은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두번째, 세번째 볼 땐 발견하게 되거든요.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럴땐.
아, 이 장면이, 이 대사가 그래서 나온 대사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게 올 때, 짜릿하죠.
더 글로리는 타임라인이 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요. 이후의 장면을 보여주고 다시 이전의 장면을 보여주고 하는 식으로 좀 섬세하게 꼬아놓았죠. 그 꼬인 실타래를 풀지 않아도 드라마 스토리 라인을 정리하는 데는 별 상관이 없지만,
다시 보면서 그 실타래들을 풀어 예쁘게 직조해 만든 태피스트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당신들의 태피스트리를 예쁘게 직조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