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50대 남편의 변신 그리고 고백


언제부턴가 남편이 제가 알던 남편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저 성실하고 맡은 바 책임 다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도 한결같지만 표현엔 서투르고, 하지만 유머감각은 있어서 뜬금없는 짧은 한마디에 사람 넘어가게 만드는 재능은 있지만 모범생 타입이자 사람들 앞에서 점잖고 애정표현은 자제하는 조선시대 양반같은 타입인 남자‘였’죠 (물론 아무도 안 볼 때에는 하고싶은거 다 합니다 ㅎㅎ) 
그런데 요사이 남편은 안보이고 그 대신 다리를 휘적거리고 다니는 문어 한마리, 꼬리 흔들며 재롱피우는 강아지 한마리, 쉴새없이 고막을 쪼아대는 딱다구리 한마리가 제 주변을 맴돌아요 


제가 책상에서 뭐 좀 하고 있으면 반쯤 꿇어앉아 책상에 손 얹고 그 위에 얼굴 얹고 저를 향해 씩씩 웃으며 뭐 시킬 거 없냐고 하질 않나, 남편이 운동하는게 있는데 매일 열심히 하길래 잘했다고 칭찬해 줬더니 다리 근육 눌러봐라, 엉덩이 근육 만져봐라 하며 막 내밀고 “와 돌덩이 저리가라네~”라고 칭찬하면 머리 내밉니다. 그래서 쓰다듬어 주면 기저귀 가득 똥싸고 빈 배를 엄마의 젖으로 가득 채운 신생아 얼굴로 변해요 ^^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해서 재밌다고 배잡고 웃으면 하고 또하고 계속…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하면 당신 좋아하니까 계속 하는거라며 “나 잘했지!”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뭔가 간식 등 보상을 바라는듯 불쌍함과 귀여움을 적절히 섞은 표정으로 서서 기다려요 
그리고 제가 방에서 주방에 가거나 책방에 가고 있으면 어느새 나타나서 제 온몸을 감고 붙어서 같이 가고 영화 볼 때도 다리의 빨판이 여기저기 쩍쩍 달라붙습니다 
팔다리도 짧은 사람이 제 몸 곳곳을 칭칭 감느라 어찌나 애쓰는지..ㅎㅎ
게다가 밤에 대충 정리하고 침대 앉아 책 좀 보려고 하면 얼른 옆에 앉아서 조잘조잘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과 디테일이 전에는 볼 수 없던, 영혼이 담긴 것들이라 맞장구 쳐주지 않을 수도 없고…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앞뒤옆 다 이야기하는 스타일인데 이제 저는 입을 다물고 남편이 열었네요 ㅠ (여보, 그동안 받아주느라 고생했어..) 


급기야 오늘, 아침으로 샌드위치와 커피, 맛있는 치즈케잌을 디저트로 먹으며 딱따구리가 된 남편의 열변을 정성껏 들어주며 맞장구 쳐주는데 갑자기 고백할 게 있다고…
아니 30년 넘게 산 부부가 새삼스레 뭔 고백?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해보라고 했더니 두가지가 있대요 
하나는, “여보, 요즘 어디 가서 커피마시고 밥먹고 할 때 옆테이블에 아줌마들 떠드는거 보면 나도 거기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넘 재밌어 보여.” (아하! 그들의 세계에 눈을 떴구나) 
다른 하나는, “당신하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 꼭 내가 먼저 죽을거야” (아니, 그럼 난 어쩌라고. 날 허리 끊어지게 웃겨줄 사람은 당신 밖에 없는데…) 
아 무서운 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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