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섭던 부모가 늙으니 이제 제가 화가 나요

엄마는  콧김을 내뿜는 코뿔소 같았죠. 철 없는 막내 같구요.
불행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편안하진 않았어요. 
뒤에서 조종은 아버지가 하지만 당장 부딪히는 건 엄마였어요. 
부모님이 아는 길은 굉장히 좁았는데 저는 그 길을 좀 벗어났거든요. 사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벗어난 것도 아닌데, 부모님이 정한 길에서 한발만 밖으로 내디디면 바로 낭떠러지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엄마는 스트레스를 저한테 많이 풀었던 것 같아요.
제가 뭘 잘하면 질투했던 것 같고, 못하는 거는 아주 강조했어요. 어릴 때 악을 쓰며 저를 혼내고 혼내고 또 혼내던 기억이 선명하구요. 격려와 칭찬 보다는 악담 같고 사기를 꺾는 말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시집을 못간다, 소박맞는다, 여자가 직업 가져봐야 피곤하다, 그 정도 학교 못가기만 해봐라, 넌 남자 조심해야 한다 그런 말들이요. 친척 오빠들이 저보고 못생겼다고 놀리면 엄마는 재밌다고 웃었어요. 
취업 후 얼마 안돼서부터는 선을 보고 결혼을 하라며 퇴근해오면 밤 11시고 12시고 제 방에서 지키고 있다가 미친듯이 저를 들볶았어요. 전 겉으로는 말 안듣고 제 맘대로 사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괴로웠어요.

결혼하고도 아버지는 애기 보고 싶다고 내 딸 집에 왜 내 맘대로 못가냐며 꽤나 먼 거리를 연락 없이 수시로 오시고,(못 오게 하면 엄청나게 삐침..) 엄마는 애를 봐주진 않으면서 둘째를 낳으라고 닥달을 해댔어요. 남편은 앞에선 세상 잘하는 사위인척 하곤 뒤로는 저를 들들 볶았어요. 
수시로 해외 놀러가는 분들이었는데 한 번은 주말에 같이 식사하고 주중에 해외 가는데 인사를 안했다고 난리를 쳤어요. 제가 며느리인줄...
경제적으로 얽힌 건 별로 없는데 빡센 직장 다니며 어린 애를 키우려다 보니 관계를 끊기는 어려웠어요. 애를 봐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비상 상황들이 있으니까요.

엄마는 저에겐 공포였어요. 충돌을 했다가는 끝까지 쫓아와 악을 쓰며 제 영혼을 탈탈 털어버릴 것 같은 공포. 비이성적 행동을 할 거란 공포. 그래서 관계를 끊을 수도 없었어요. 실제로도 비슷한 경우들이 있었고요. 그땐 제가 당한 건 아닌데 옆에서 보면서 치매가 됐거나 미쳤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이제 늙어서 급격히 힘이 빠지고 있어요. 힘이 서서히 빠지지 않고 급격히 빠지더라구요.
그러면서 저의 두려움도 급격히 약해지고 있는데, 대신 이제 화가 납니다.
화가 나서 보기가 싫어요. 말도 섞기 싫고요..눌려있던게 이제 튀어나오는 걸까요. 
엄마가 제게 잘해준 것도 있죠. 엄마의 장점도 있구요. 그런데 생각이 안나요..
제가 화에 사로 잡힌 것 같고, 화가 나는 것조차 싫습니다. 평안해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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