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완경과 갱년기

타고나기를 감정보다 이성이 압도적으로 발달한 기질이었어요.
어찌 연애하고 결혼도 했는데 아이 하나 낳고 리스였어요.

외모나 몸매 이십대에는 미스코리아 나가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객관적으로 그 정도는 아니었고 30대 이후에도 동년배 일반인 중에서는 상위권이라 생각해요. 그런데도 십수년 리스가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어요. 남편이 이기적이고 왕자병이 심해 마음이 가질 않아 부부관계도 내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 남편과 같은 직업이고 친정은 시댁보다 훨씬 잘 살아요. 그래도 내 아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는 게 제일 중요해서 내 일 하고 남편과는 소 닭 보듯 깊은 얘기 안하고 언제부터인가는 싸우지도 않고 살았어요.

3년 전에 완경 조짐이 있었는데 그 즈음 업무로 알게된 분께 깊은 호감을 느꼈고 그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이라는 걸 알고 매우 당황했어요. 생각해보니 단 한번도 내가 먼저 누굴 좋아해본 적이 없고 십대에 흔한 연예인 덕질조차 안해봐서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은 뭔가 정말 당황했던 것같아요. 매우 능력있고 예의바른 분이었고 사적인 연락 한번 안하고 공동 업무 종료로 1년만에 아무 일 없이 끝났지만 감정적으로 제 첫사랑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마지막 이성까지 쥐어짜고 죽을 힘을 다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2년 전 완경이 되고 그 폭풍 같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로 호르몬 장난이라는 걸 체감했네요. 지금은 사랑뿐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모든 부분이 퇴화된 것 같아요. 슬픔이나 기쁨 같은 기본 감정도 거의 안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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