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처참히 깨진 과외선생의 넋두리

지금 예비 고2 되는 아이를 중1 부터 과외를 해왔어요.

영어 전 영역을 커버했고 중학교때는 학교 시험에서 100점도 맞았죠.
(경기도 학군지, 가장 내신 빡쎈 학교)
그래도 제가 보기엔 허술해 보였어요. 문법도 복습복습, 쓰기도 쓰고, 쓰고, 또 쓰고요.
근데 아이가 단어를 이상하게 외워요. 영단어는 안외우고 영어 단어 앞 스펠링 하나랑 한글 순서로 외우더라구요. 그러니 단어 실력이 처참합니다. 그래도 단어도 쉬지 않고 해왔어요.

고등학교에 가니 첫 학기에서 3등급을 받더라구요. 나쁘지 않다 생각했죠.
그저 차차 더 나아지겠거니 계속했죠.
근데 그 다음 시험부터는 아주 처참해요.
일단은 여전히 단어 못 외워요. 그러니 모의 고사 문제를 숙제로 내서 무작위로 내용묻는데 그때서야 눈에 들어오는 몇 단어를 조합해서 아주 근사한 스토리를 만들어 냅니다.
물론 답에는 모두 표시가 되어 있지만 그 답이 왜 나왔냐고 물으면, 대답은, 그냥요, 감이 그래요, 다른 건 말도 안되잖아요..이런 식의 대답만 합니다.

그러면 제가 정확하게 내용을 얘기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러면 또 단어 몇 개 조합으로 말을 만들어요. ㅎㅎㅎ

책은 단어책이든 , 모의고사 문제 책이든 아주 깨끗해요. 그냥 내다 팔아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묻죠. 어떻게 아무 표시 없이 공부를 하느냐고요. 그러면 대답을 안해요.
공부 하는 사람들 책을 아예 갖다가 보여줘도 그 다음에 여전해요.

내신 기간 동안 범위를 공부하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어요. 얘는 사장님처럼 의자 뒤로 젖히고 눈으로 봐요. 고개 끄덕끄덕하면서요.
저는 열심히 자료 만들어와서 밑줄, 형광펜 다 사용해서 내용분석부터 단어, 문법, 그리고 변형문제 만들어 공부하고요.
누가보면 제가 학생이고, 얘가 여유있는 전문 영어쌤인 줄 알겠어요.

내신 기간에는 읽고, 또 읽어라, 지문에 너가 모르는 것, 문법 사항 다 쓰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라..이 소리를 정말 수백번 했나봐요. 근데 절대 안하죠. 저와 다급하게 한번 커버하고, 두번 다시 한벙 복습하고, 마지막에 변형 문제 풀고..이렇게 하는 것이 시험 공부에 전부죠.


그러니 시험 성적이 좋겠어요?? 1학년 2학기는 38,48점.

방학 때 단어랑 어법 모의고사만 하자고 했어요.
안합니다. 핑계가, 아빠가 집에 없어서 안했다, 했는데 뒤에 것 외우기 앞에 것 까먹어서 못했답니다.
모의고사 문제는 골라놓은 답이 왜 그 답이 되었는지 대답을 못해요. 모르는 단어를 찾아 읽으라고 하면 단어만 찾고 문제는 읽지 않아요.
답만 표시한 것 아니냐고 하면, 다 읽었는데 까먹었대요. ㅎㅎㅎ

부모님한테 유학하고 싶다고 했다해요. 이 집이 돈은 엄청 많은 집이거든요.
근데 유학은 아무나 가나요?? 영어를 이렇게 못하는데요.

며칠 전 수업에서 두 시간을 애를 족치고 왔는데 새벽에 머리가 넘 아파 깼어요.

정말이지 수백번을 말해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 남의 집 아이, 제가 왜 제 건강까지 해쳐가며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동안도 몇 번이나 그만두려 했지만, 이 아이 부모님의 의리(?), 그리고 놀면 뭐해 정신으로 버텼는데 이젠 정말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아이에게 난 너한테 졌으니 나는 그만 둔다, 새로운 선생님 구할 때까지는 와주겠다 했더니 새 선생님을 구할 맘이 없네요?

근데 이젠 정말 번 아웃이 와서 정말 과외는 하고 싶지도 않아요. 무기력하구요.
다른 애들에게는 3월 15일까지 못한다했고, 다른 좋은 선생님 찾아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직 중2라서 급하지 않은지 쉬고 재충전 하고 오라네요.

수천번을 얘기하는데도 단 일센치도 움직이지 않는 아이에게 처참히 패배했어요.

깨져서 누운 김에 쉬어 가야겠죠.

최근 많이 읽은 글

(주)한마루 L&C 대표이사 김혜경.
copyright © 2002-2018 82cook.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