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요즘 핫한 난방비 얘기에 묻어가는 시댁 난방기

지금은 돌아가신 시아버님 얘기예요. 전에 82에 한번 썼다가 지운 적 있어요. 

막 제가 시집갔을 때 시댁은 기름보일러를 때는 아주 오래된 주택이었어요. 
재개발 예정지라 시청에서 아예 도시가스 설비를 안해주고 버티던 곳이었죠. 

아주 아주 옛날에 지은집이라, 마당이 있고, 유리문 달린 툇마루가 있고, 툇마루를 따라 나란히 미닫이 문이 달린 방이 두개, 한쪽 끝에 부엌이 있는 그런 구조였어요. 그리고 그 부엌 뒤로 나중에 달아낸 곁방이 있었고요. 옛날집이라 그랬는지 안방도 그렇고 건넛방도 그렇고 창문이 없었어요. 미닫이 문 출입구가 창문의 역할까지 대신하는 구조. 방도 엄청 작았고요. 그런데도 옛날 집이다보니 툇마루에 달린 유리문도 홑겹 알루미늄 샤시. 미닫이 문도 홑겹 나무 문짝에 절반은 홑겹 고방유리 달아놓은. 우풍이 우풍이 말도 못하는 집이었죠. 

시댁의 난방 결정권자 ㅎㅎㅎ는 시아버님이셨는데, 난방을 굉장히 특이하게 하셨어요. 
그야말로 그 옛날 군불때는 온돌방 난방하듯.
저녁 8-9시 정도 잠자기 전이 되면 난방을 있는대로 돌려요. 보일러 온도를 최강으로 높여서, 진짜 온 방바닥이 뜨거워서 발을 디디지 못하게. 그렇게 한시간 쯤 돌린다음 난방을 딱 꺼버려요. 난방을 돌리는 동안은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숨을 쉴 수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가, 난방을 끄고 나면 얼마 안되어 싸늘하게 추워지는 집. 

이게, 아무리 그러지 말라 말을 해도 소용이 없고, 

단순히 기름값을 아낀다... 그런 의도라고 보기에는 좀 어폐가 있는게, 그래도 온수가 나오는 집이라 설거지나 부엌일을 누가하든(주로 명절에는 며느리가 하죠마는) 온수가 나오게 해 주셨어요. 보일러를 난방에서 급탕모드로 바꾸어 꼭 틀어주셨죠. 욕실은 집 밖에 가건물처럼 따로 달아낸 구조라 온수 설비가 안되어 있어서, 부엌에서 뜨거운물을 끓여다가 욕실에 갖다 놓거나, 요즘 세상에 보기드문 그 곤로, 아시나요? 그 곤로위에 들통을 올려 물을 끓여주셨죠. 나름 자상하신 분이셨어요. 

그런데 난방은 그렇게 악착같이 이상하고 희한하게...;;; 하시더란. 저희 친정도 주택이지만 친정은 그렇게 난방을 하지는 않는데... 그때야 뭐, 새색시이기도 했고, 추운 시기에 시댁에 가는 게 설날 딱 그때 한번인데 뭐라 말을 하기도 참 난감하고. 주택이라 구들장이 워낙 두꺼운가? 아니면 구들장에 군불 때고 살던 시기의 추억이 너무 강하게 남으셨나 하고 말았죠. 

그렇게 한 10년 뒤 24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어요. 

네... 거기서도 똑~~~~ 같이 난방을 하셨어요. 시어머니가 난방 조절기에 손을 대면 미칭개이;;;(시어머니 표현입니다!!! 미친놈이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처럼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서 난방 조절기에 손을 못대게 하고;;;;(시아버님 본인에게는 나름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었나봐요 그게.) 
저녁 7-8시에 한시간동안, 방바닥이 뜨거워 맨발로는 디디지도 못하고 두꺼운 이불을 펼쳐놓고 그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수준의 난방을 통해 영창대군이 당했다는 팽형을 경험하게 하고는, 식구들이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어린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을 정도가 되어서도 본인이 설정한 한시간의 난방을 채운 다음 보일러를 딱 꺼버림. 그리고 추워지든 말든 바닥이 차갑든 말든 그냥 뒀다가 새벽 5-6시에 또 한시간동안 온 가족을 다 팽형에 처하는 놀라운....;;;

뭐, ㅎㅎㅎㅎㅎㅎㅎ 그 때는 이미 새색시도 아닌데다
난방 조절기가 있는 안방에서 저희 가족이 잤으므로, 밤에 잠 잘 때는 제 맘대로 걍 난방 23도에 맞춰놓고 편안하게 잤습니다만. 

지금 다시 되돌아 생각을 해 봐도 신기하고 웃겨요. 

구들장에 군불 때 난방하던 시절의 기억을 평생가지고 사셨던 걸까 싶기도 하네요. 지금 생각하면. 

저야 명절 하루였지만, 같이 사는 시어머니는 겨울만 되면 그 난방 때문에 시아버님과 매일 싸우셨죠. 
시어머님은 급격한 온도차이 때문에 감기를 달고사셨거든요. 시아버님은 매우 건강하셨기에 술병 말고는 병이 나 본 일이 없다는. 
명절에 보다 못한 아들들이 큰 소리를 내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셨다는. 
나중엔 그냥 다들 집을 나가버렸어요 ㅎㅎㅎㅎ 그 팽형 당하기 싫어서. 

아, 그래서 그 시절에, 24평에 살면서 파카를 껴입고 살아야하는 아버님 댁의 가스비와 34평에 살면서 가벼운 실내복 차림으로 네식구 모두 매일 따뜻한 물 샤워를 하며 살던 저희 집의 가스비는 동일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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