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비현실적인 풍경

역대급의 추위라고 하여 모두들 집안에 둥지를 튼 채 웅크리고 있는 오후입니다. 찻잔을 씻으며 창밖을 보니, 하늘은
봄하늘처럼 포근하고 마알간 파란빛에 흰구름이 몽글몽글.

어제 오후 모처럼 아들 면회를 갔지요.
보통은 사양하는데 명절에는 그리운 모양입니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지만, 군대라는 심리적 거리감은
어찌할 수 없는가 봅니다. 좋아하는 음식들과 후식들과
유난히 과일 좋아하는 아이라, 색색의 과일도 예쁘게 담고…
면회실 동기들에게 배달시켜줄 음료를 물으니, 다들 얼죽아네요. 창밖의 고참 고양이들에게 남은 고기도 던져주고요.
돌아오는 길에 보니, 교외의 아울렛 명품관들 앞에 길다랗게
늘어선 자동차들의 행렬이 명절 뒤끝의 소비 열풍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세상이 온통 하룻밤만에 이토록 얼어붙다니…

오후의 햇살이 참 따뜻하고 포근해 보여서(?)
창가에 찻자리를 마련하고 핫팩과 무릎담요 안고 앉습니다
마음에 잔잔하게 파문을 일게도 하고 가라앉게도 하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틀어놓고
몇주째 아껴서 읽고있는 울프의 등대로를 펼칩니다.
20대에는 읽히지 않던 문장들이
한줄 한줄 심장을 파고 듭니다.
사람의 개성과 나날의 풍경들, 그리고 인생에 대한
시간의 아니, 세월의 흐름에 대한 통찰들.
아름답고 지적인 문장들.
한줄 한줄 밑줄 그으며 읽는 영문의 아름다움.
한없이 오랫동안 읽고 싶어 집니다.
올 한해는 뒤늦게 버지니아 울프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듯 합니다.

1.
램지 부인은 등대지기의 아이들에게 가져다 줄 양말을 짜는
중입니다. 아들 제임스의 다리에 재어보니 아직도 짧습니다.

“짧아, 아직도 너무…”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 누구도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은 적 없으리라. 밝은 햇빛에서 어두운 심연에 이르기까지 뻗쳐 있는 빛줄기 속에서 중간쯤의 어딘가에 어쩌면 눈물이, 쓰디쓰고 검은 눈물이 한방울 맺혀서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바닥에 고인 물이 이리저리 흔들거리다가 그 눈물을 받아서 이윽고 조용해졌다. 그 누구도 그렇게 슬퍼 보인적은 없었다.

2.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들이 이따금 별의 모습을 드러내주곤
했는데, 별들도 흔들거리고 있는 듯했고 나뭇잎들 가장자리 사이로 빛을 발하려고 애쓰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 생각을 되풀이하며 이 밤, 이 달, 이 바람, 이 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부인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3.
아버지는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고, 다음 순간 그는 책을 찾을 것이었다. 그녀(딸)에게는 그가 누구보다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손,발 그리고 목소리. 그가 하는 말, 서두름. 성깔과 기벽. 열정. 모든 사람 앞에서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가’ 라고 주저없이 내밷어 버리는 것. 그리고 초연함. 그 모든것이 아름다웠다.

4. 그리고 유머

구두가 참으로 훌륭해요. 그녀는 탄성을 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는 영혼을 위로해 주길 요청했는데, 고작 구두를 칭찬하다니… (그리고 계속 구두이야기)

그는 유유 자적하게 아직도 공중에 치켜 올려진 채로 있는 발을 내려다 보았다. 그들은 평화가 깃들어 있고, 건전함이 판을 치고, 태양이 영원히 빛나는, 좋은 구두의 축복을 받은 섬. 태양이 내리쬐는 섬에 도달했다고, 그녀(릴리)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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