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은 학대의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폭언, 폭행은 공기처럼 날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마흔이 훌쩍 넘었고 아버지는 칠십중반이다.
이제 물리적인 폭행은 없지만
예측불가능한 지점에서의 폭발적인 화, 짜증은 여전하다.
지난 가을 아이 둘을 데리고 김장을 하러 갔다.
김장이 끝나자마자 쌓아놓은 김장통을 보고 아버지는
폭발했다. 차마 들을 수 없는 날 것의 욕들이 쏟아졌다.
엄마를 향해 퍼부었지만 나는 그게 누구 몫인지 잘 알고 있다.
아이 둘에게 미안하고 창피했다.
서둘러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고 급히 친정집을 나왔다.
면사무소까지 3,40분은 걸릴 시골길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꾹꾹 눌러다며 걸었다.
다음날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않냐고 했다.
엄마는 아빠랑 잘 지내시라고, 나는 이제 가지 않겠다고,
이제 엄마가 우릴 보러 오시라고 전하고 통화를 끝냈다.
한달 뒤 아빠의 생신에 가지 않았다. 연락도 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설이 오고 있다.
엄마의 진수성찬, 우리가 갈 때 맞춰 미리 짜놓는 기름들,
각종 청과 차, 장들이 생각난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맞이했다.
난…그런거 말고 짐승같은 남편 단속이나 했으면…
그와 제발 해어졌으면 하고 바라고 바랐다.
혹시나 그 많은 음식들을 하면서 우리를 기다릴까봐,
새해 인사도 나눌겸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너는 설에 안올거지?
라고 묻는 말이 팽팽하게 울렸다.
시간날 때 엄마가 와. 우리는 안 가는게 아니라 못가는거야.
엄마도 알잖아.
그래. 하나뿐인 딸년이 찾아오지도 않는데 내가 뭣하러 가냐.
엄마, 안가는게 아니잖아. 설 잘 보내.
전화를 끊자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런 상황에 죄책감을 갖게 하는 엄마의 말이 미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옆으로 큰 애가 누웠다.
설에 할머니 댁에 안가려고, 근데 할머니가 속상하신가봐.
우리가 가는 걸 할아버지는 그렇게 싫어하는데
할머니는 그래도 우리가 가는게 좋은가봐.
나는 할아버지가 우리가 가는 걸 싫어한다는게 사실인지
모르겠어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잖아요.
할아버지는 우리가 가면 늘 화를 내잖아. 나는 그게 정말 싫어.
할아버지도 진짜 원해서 화를 내는 건 아닐거에요.
화를 어쩌지 못하는거지.
엄마랑 할아버지랑 있으면 늘 싸우는데 그래도 할머니는 우리가
왔으면 좋겠나봐.
할머니는 그걸 감당하시는거에요. 그래도 우리가 가는게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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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감당하고 있다고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늘 생각해온 나의 판단도
사실이 아닐 수 있지요.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알지 못하면서도
나는 늘 한가지만 떠올려왔거든요. 그게 정답인양….
늦은 밤 아이에게 말했어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엄마한테 큰 위로가 됐어.
엄마는 할머니에 대해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거든.
사람은 다 각기 다르니까요.
응… 오늘 니 말은 엄마한테 정말 필요한 얘기였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