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가출해서 호캉스했다던 원글입니다

저희집이 경남이거든요
그날 하루 호캉스하고
다음날 경기도 와서 친구 만나고
엊그젠 서울가서 다른 친구 만나 강남 먹방투어하고
그 친구랑 또 수원가서 호캉스하고
담날은 브런치먹고 수원화성 다녀왔어요
엊그제 만이천보 어제 만삼천보 걸었네요
날씨가 춥지않아서 감사했어요
어제 제주도로 가볼까하다 정동진 왔어요
오랜만에 와서 겨울바다 보니 정말 좋네요
숙소에서 커피 마시면서 일하고 있어요
많이 걷고
수다 떨고
햇볕 쬐고
바다 보니
온갖 근심걱정과 분노가 다 녹네요
이번일만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사람은 별거 아닌걸로 쌓아왔던 게 터지고
별거 아닌걸로 다시 괜찮아지나봐요

1월1일에 남편보고 한해 수고 많았고 올 한해도 우리 잘 살아보자고 했더니 무섭게 왜 그러냐고 하대요.
쉽게 판단하고 쉽게 탓하는 일부 82님들은 얼마나 평소에 쥐잡듯 잡았으면 저러냐 생각하시겠지만
이건 이 사람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외로움이자 트라우마이고 평생 차고 다닐거같은 족쇄입니다 어린시절 가스라이팅과 신체적, 정서적 폭력의 결과구요

저랑 행복하면 죄책감 든답니다
내가 이래도 되나 싶어합니다
그냥 통상적인 새해인사조차도 무서워하는 사람과
좋은마음으로 건넨 말들에 대한 일반적이지 답변을 가슴에 박은채 사는 그의 배우자이죠
죽기전에 그의 친부와 계모의 멱살한번 잡아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이 사람과 사는동안 종종 생각합니다
저보단 이 사람이 결혼을 잘못했다 생각합니다
좀 더 그릇이 큰 사람이랑 살지..

의외로 부부사이는 좋습니다
서로 많이 좋아하거든요
지금까지 손 잡고 걷습니다

오늘은 다시 저희 지역으로 갈겁니다
생각보다 셋 생각이 별로 안 나고
너무너무 좋고 해방된 기분이라 저도 당황스럽네요
이런 상황이 오면
마음이 불편하고 걱정되서 제가 아무것도 못 할줄 알았거든요
그만큼 남편이, 애들이 많이 컸나보다 하고 그저
뿌듯합니다 ㅋㅋ

예상대로 아들한테는 연락이 여태 없습니다
오늘 방과후 가는 동생 챙겨주고 제시간에 보냈다 하네요
자존심이 정말 하늘처럼 높은 아이라
제가 들어가는 날까지 문자한통 안 올꺼라 생각합니다
이거도 귀엽지않나요? ㅋㅋㅋ
키가 멀대같은 중2인데 제가 가끔 넌 왜 그렇게 귀여워?라고 물어보면 대답이 ㅋㅋㅋㅋ 아씨 라거나 엄마 하지마 하면서 짜증내는 게 아니라 차분하고 곱게 "몰라" 라고 대답해요 ㅋㅋㅋㅋㅋ 그 대답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맨날 물어보고 싶지만 꾹 참고 일주일에 한두번만 물어봅니다

이따 여기를 떠나 다시 제가 사는 지역에 도착하면
2박 예약해둔 호텔에 갈겁니다
제 위시리스트였어요
이틀동안 아무도 찾아오지않고 아무도 모르는데서
혼자 이틀연속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신경도 안 쓰고 뒹굴대기만 하고싶다
그거 하러 갈겁니다

그리고 나선

이제 날 사랑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던 아들은 없단걸 인정하고 멀리 떨어져서 내 일 하는 엄마
필요하면 고기만 잘 구워주는 엄마가 되서 집에 들어가렵니다

20년 가까이 나자신보다 안쓰러워하고 사랑해서 매번 상처받았던 남편과의 관계도 20년동안 그렇게 해왔던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안쓰러워하는 배우자가 되어 살아보렵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좋고 엄마딸인게 행복하다는 우리딸
아빠가 어떤사람이건 줄기차게 굴하지않고 표현하고
통화말미마다 아빠 사랑해!하는 사랑많은 우리딸도
곧 올 사춘기에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지금부터 조금씩 해보고요^^


바다 보고 있으니까
몇년전 아들이 생각나네요

엄마 꿈은 뭐였어?

- 엄마는 작가도 되고 싶었고 사회복지사도 되고싶었고 바리스타도 해보고싶었고 여러가지였는데 지금은 자식들 행복하게 자랄수 있게 좋은 엄마가 되는게 꿈이야

(눈이 동그래지며) 그럼 엄마는 꿈을 이룬거네????

- 엄마가 xx이한테 좋은 엄마야?

응!



평생 가도 못 잊을거 같은 그때 아들의 표정과 억양
품에 안았을 때의 향기


나만 오롯이 기억하는 내가 최고였던 내 아들
좀 더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나갈 준비해야겠습니다.

아들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림보 엄마
몸은 뒹굴뒹굴 쉬고 마음은 열심히 뛰어서 아들 따라잡고 가출 마무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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