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청바지가 36만원


어제 나는 늦게 백화점에 갔다가 문제의 그 청바지를 봄

사실 나는 청바지 매니아임 패션감각이 떨어져 다양한 종류의 옷을
입지 못함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청바지만 입음

한때 비싼 청바지도 사입었는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남
온라인 쇼핑몰에서 청바지를 사 입은지 너무 오래 되었음
내가 사입는 청바지는 3만원에서 5만원선임

평생 먹는 것 신경쓰지 않고 마음대로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몸을 가지게 되었음 청바지를 입으면 흉한 몸을 이제 가지게 되었음
어쩔 수가 없음 나이드는 일의 쓸쓸함이여


어제 나는 백화점에서 그 청바지를 봄

그 매장은 내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 고급매장임
들어가서 옷을 만져보면 티셔츠같은게 20만원 블라우스같은게
50만원하는 그런 곳임 나는 어제 거기 들어갔음 마쳐갈 무렵의
백화점 매장은 조용했고 직원은 친절했음


나는 후줄근한 옷에 5만원짜리 청바지를 입고 머리는
노란 고무줄로 묶고 있었음

청바지는 36만원. 보는 순간 너무 마음에 들었음

색깔은 스카이블루 맑은 바다빛이었음

몸에 들어붙는 흉한 바지가 아니었음 나는 그 바지가

몹시 마음에 들었음


그러고 보니 엄마가 살아계실 때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때

나에게 남편과 아이가 없었을 때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

결혼을 하지 않았고 젊은 여성이었으므로 엄마는 나를

(비록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었지만) 아름답게 꾸며주고 싶어하셨음



여름이 되면 백화점에 가서 나에게 삼십만원짜리 원피스를 턱턱
사주셨음.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면 두 개도 사주셨음
계절마다 사주셨기에 옷장에는 옷이 가득했음

가을이 되면 또 백화점에 데려가 내가 고르는 옷을 다 사주셨음

겨울이 되면 백만원짜리 코트도 무스탕도 가죽쟈켓도 사주셨음

나는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녔음 나에게는 그런 시절이 있었음

계절마다 가방을 사고 구두를 사고 머리를 하고 영화를 보러
다녔음 그때 나는 내가 아름답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 청춘이었음

청춘의 한 가운데에 있었음. 무엇보다도 집에 돌아가 방문을 열면
엄마가 있었음 나를 꽃보다 예쁘다고 하는 엄마가 있었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런 옷들을 통 사 본 적이 없음

처음에는 있는 옷들을 입었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그런 옷을 입을 일이 없었음

시간이 지나니 그런 옷들은 유행이 지났고
나는 그런 옷을 입고 갈 곳이 없었음

결혼초기에 나는 엄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남편에게 했음
백화점에 가서 삼십만원짜리 쟈켓이나 십만원짜리 바지를
사 주었음 남편은 비싼 옷을 산다며 펄쩍 뛰었지만
집에 와서는 기뻐했음

우리는 그렇게 살다가 2년뒤 아이가 태어났음

이후에 우리 둘은 내내 싸구려옷만 입었고 비싸고 좋은 것은
아이만 사주었음 아이는 한해 한해 잘 자라서 아이옷 사는 것만도
바빴음


나는 36만원짜리 스카이블루의 멋진 디자인의 바지를
한참동안 바라 보았음


그리고 나는 그 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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