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아들이 게임을 좋아하는데(자주 하진 않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했고 시험 한달전부터는 게임을 아예 안하는 방식) 부속 기기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커스터마이징 키보드에 대해 거의 열망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압니다. 워낙 고가(50만원 정도)라서 남편과 저는 아예 사줄 생각이 없어서 말도 못꺼내게 했는데도 아이가 그 마음을 놓지 못하고 몰래 검색하는 걸 알아요.
아이는 어떻게해서라도 그걸 얻고 싶어서 시험을 잘보면 사달라고 졸라왔습니다. 그냥 잘 보는 게 아니라 만점 받으면 사달라고요. 아이거 다니는 학교는 시험 난이도가 꽤 있는, 지방이지만 학군지 중학교입니다. 1학기 시험은 못보진 않았지만 만점이 아니어서 아이 낙담이 컸어요. 2학기 시험도 엄청 별렀는데 중간고사는 그닥이었고 기말에서는 전과목 통틀어 1개를 틀렸습니다. 전과목 올 a이고 수행도 근성있게 하고, 집에서는 지랄맞지만 학교에서는 어쨌거나 모범생입니다.
만점은 못받았지만 아이입장에서(굉장히 집요한 아이입니다) 그 키보드를 얻기 위해 나름 빌드업을 해왔던 거 같습니다. 생일선물도 나중에 달라며 받지 않았고 엄마아빠에게 뭔가 얻어낼 목적으로(저는 그런 의도로 아이가 접근했다고 봅니다 ㅠ ㅠ) 교내 대회도 근성으로 참가해서 은상도 타왔어요. 그리고 오늘 크리스마스 선물로 계속 뭔가를 해달라고 하더니 [생일10 상탄거 5 크리스마스 선물10 시험 잘본거 25] 이런 식으로 정산(?)을 해달라고 톡을 보냈어요.
아이가 1년 동안 키보드를 위해 달려왔고, 1년 동안 뭔가를 산 적이 없거든요. 지랄맞긴 하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이끄는 대로 끌려오긴 하고, 스마트폰도 없고, 피시방을 다니는 것고 아니고, 게임을 분별없이 해대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날에만 하고 그마저도 시험 한달전엔 꾹 참고 하지 않습니다. 내신 공부하느라고요. 그래서 너무 고가이고 분수에 안맞긴 하지만,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대해 원하는 보상은 해주는 것이, 나중에라도 아이의 성취욕이나 동기유발 등의 차원에서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편은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이 50짜리 키보드를 사는 것은 미친 짓이고 부모로서 그걸 용납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어느 정도 좋은 키보드를 사줄 용의는 있으니(10~15만원? 근데 아이가 절대 받아들이질 않을 거라는 걸 잘 압니다. 아마 이건 남편도 알거 같아요) 50만원짜리 고가의 키보드는 암튼 사줄 수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직 아이한테는 말하지 않았고 저희 부부 입장도 조율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과하다는 건 알기에 그걸 직접 사주기는 싫고, 아들이 청구(?)한 금액을 수용해주되, 그 금액 범위에서 네가 사고 싶은 걸 사라(결국은 키보드이지만)고 하는 건 어떨까 입니다. 처음 시험을 경험한 중2 아들이 그래도 1년 열심히 보낸 보상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남편은 그 결과에 대한 보상으로(어차피 학생이 공부하는 게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기에) 너무 과하다는 입장이고 더욱이 키보드라는 사치품에 돈을 탕진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입장이구요.
남편이 먼저 82에 올려보라고 해서 글 올려봅니다.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