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집은 가난했는데 책을 많이 읽었어요. 사실, 직업도 그렇고 지금도 활자 중독입니다. 집에 책이 풍족하지 않으니 다독보다는 반복해서 읽기를 했는데요. 서머셋 몸의 이 소설은 중편으로 책의 겉표지가 뜯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여러 번을 읽었죠. 주인공 키티를, 즉 작가의 의도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한 건 제가 대학생 때에 이르러서입니다. 이미 수십 번 읽은 후이죠.
번역을 잘 한건지 작가가 워낙 잘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머셋 몸의 문체는 참 독특했어요. 드라이하고 냉소적이고 그러면서도 인간의 현실적인 본질을 잘 꿰뚫어냈죠. 그러면서도 가령, 까라마조프네 형제들 보다는 가벼워서 좀 경박하기도 했어요. 연애소설에 가까왔죠. 와인으로 치면 바디감은 중약정도.
우연히 보게된 영화소개 유튭에 갑자기 여고생 시절, 대학시절이 떠올랐네요. 그 때 키티에게서 보았던, 그녀가 강제로 성숙하고 현명해져야 했던, 인생의 본질에 나도 충분히 가까워졌기를 바래요.
혹시 써머셋 모옴의 페인티드 베일 읽으셨던 분 있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