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망가진 식생활과 삶..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전업이 되면서...
식생활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육아가 두렵고 무섭고...
내성적인 성향이라 누구에게 의지할 곳도 없고...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만 보내고 나면
라면 먹고 빵 먹고 과자 먹고..
폭식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사람이 이렇게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고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오히려 저를 학대하고 있었어요.
괴로울 때까지 꾸역꾸역 정말 문자 그대로 처먹었습니다...
새벽 두시까지도 먹고 간신히 잠을 청했어요.
방구석에 처박혀서 집안일도 안하고...
저녁엔 술 마시고...
이렇게 한 십 년 넘게 산 것 같아요.
살도 80킬로까지 찌고..

어떻게 인생을 이렇게 보냈을까요.
거울 앞에 서니 누렇게 뜨고 붓기 심한 얼굴에 무너진 커다란 몸,
망가질대로 망가진 모습의 중년 여성이 보이네요.
뒤로는 먼지쌓인 엉망진창의 가구들...

중간에 몇 번이고 이런 삶 벗어나자고 다짐하고,
나가서 달려도보고, 수업도 들어봤지만,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아이들 등교길에 함께 나가 알콜중독자처럼 편의점에서 라면과 과자를 사서
돌아오는 제 자신, 눈에 닿는 손끝 발끝마다 절망이었습니다.
그 절망은 또 먹는 걸로 풀었죠..

영리하게 태어나 반짝거리던 아이들은
제가 케어를 다른 엄마들처럼 해주지 못하니,
시들시들 시들어가는게 눈에 보이고요..
저는 폭식과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정신과 내장이 다 망가져서 고통받다가 곧 죽을 것 같아요.
3개월 전 건강검진만 해도 큰 이상 없다고 나왔지만,
1년 넘게 가슴과 복부의 통증과 여러 이상 증상들이 계속돼요.
통증이 올 때마다 울컥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와요.
뭔가 큰 병이구나..
먹는게 그 사람을 가리킨다는데,
쓰레기처럼 먹었으니 내 몸은 돌이킬 수 없는 쓰레기가 됐겠구나.

어디서부터 문제였을지...
그냥 사는 게 어릴 때부터 고통이고 의미를 찾을 수 없었어요.
정말 꾸역꾸역... 눈뜨면 학교가고 친구도 없이 멍하니 있다가
집에 가라고 하면 가고
때 되면 먹고 자고
한순간도 삶에 진심이었던 적이 없어요.
죽을 용기가 없었을 뿐이죠.

부모님이 보다못해 붙여주신 과외선생님이
바로 옆에서 열강을 해주셔도 머릿속으로는 딴 생각을..
어찌어찌 들어간 대학에서도 수업시간엔 늘 졸고,
취업해서도 근무시간엔 늘 딴짓하다 야근... 집중하기가 어려웠어요.
내 방 하나 깔끔하게 유지해본 적 없고,
서랍은 항상 간신히 닫힐까 말까한 쓰레기통.
늘 씻는 것도 귀찮았어요.

더럽고 멍청한, 머릿속에 든 것 없이 먹는 것만 밝히는 인간이었는데,
어떻게라도 살아보려고 남들 앞에서는 포장을 잘 해서인지,
몇 안되는(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지인들은
저를 착하고 참하고 생각 있고 아는 것 많고 부지런한 사람인 줄 안다죠.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는 지금 어른으로서 알아야할 상식들을 하나도 몰라요.
집값이 어떤지, 지금 우리집 가계 상황이 어떤지,
아이들 입시는 어째야하는지, 노후는 어째야하는지,
남편과도 거의 대화없이 살고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하면 안되는 거였는데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네요.
주워담을 수 있다면 모두 원위치로 해놓고 싶어요.
오늘따라 열 살 아이가 유난히 반짝반짝 예뻐보여요.
이렇게 똑똑하고 예쁜 아이,
엄마가 부지런히 공부시켜주고 기량을 갈고 닦아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텐데
한심한 저때문에 우울하고 산만한 삶을 저처럼 살게 될까 그게 마지막으로 너무 두렵습니다.
다음주엔 예약해둔 병원을 가는데,
사형선고를 받을 것만 같아 막막합니다.

제대로 살고 싶고…
한편으로는 고통없이 죽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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