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어느날 스타벅스에서 혼자 과제하며 앉아있었어요
조용한 시간대여서 옆 테이블에서 하는 말들이 꽤 잘 들렸는데
잠깐 멍 때리는 와중에 그들의 대화를 나도 모르게 경청하고 있더라고요
좀 듣다보니 긴가민가 한 부분이 있었지만 결국
결혼을 앞둔 부부의 대화라는 걸 알아채긴 했어요
근데 그 긴가민가 한 부분이라는게…
두 분의 서로를 향한 엄청나게 정중한 존대와 심각함
저는 솔직히 처음에 두 분 업무미팅 하는 줄 착각 했어요
대화톤만 들으면 당연히 업자와 고객인가 싶었거든요, 이를테면
XX께서 이 물건 전달을 부탁하셨어요
이 분들은 제가 특별히 신경 쓸 예정이에요
지금은 이 정도로 컨펌 됐고, 더 필요한 추가 사항이 있을까요?
이런 식의 말들이 오가니까 저는 이 사람들이 결혼해서
같이 살 사람들이라고는 쉬이 파악이 안되던…
커플의 회의 주제가 집과 인테리어로 넘어가면서
그나마 아 예비부부구나 확신할 수 있었는데, 이것마저도 대화가,
여기는 투자가치상 의미는 있지만, 다른 메리트가 너무 떨어져요
저는 방에 걸어 둘 그림을 좀 보고 있는데, 그림 괜찮으시죠?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둘째 며느리와
큰 손자인 진성준이 예비 부부로 만나서 얘기하는 톤
그리고 여자분이 잠시 실례할게요(!!!) 하면서
화장실을 가신거 같은 사이
남자는 다른 여자로 추정되는 사람과
‘어 오빠 두시간 후면 끝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야지’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스윗한 통화를 하시는데
예비신부가 돌아올까봐 내 가슴마저 쿵쾅쿵쾅 뛰더라고요
아 이게 으른의 세계인가 뭔가 흥미진진
당시 남자친구를 뿡뿡이 또는 똥돼지라고 부르며 ㅋㅋㅋㅋㅋ
그런 보통의 연애를 하던 젊은이었던 저는
이 정중한 언니오빠 예비부부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계속 훔쳐 듣느라
한동안 제 숙제를 못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스타벅스 아직도 있는데
지나갈 때면 한번씩 궁금해요
그들은 과연 손은 잡고 결혼했나
애는 낳았나! 그게 되나!
생리현상 텄나, 아직도 화장실 갈 때, 실례할게요 그러려나
당시 그 커플이 매입을 고민하던 아파트는 반포였습니다.
그때 샀어야…
결론은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