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나의 50평생을 좌우한 8살 때의 경험

70년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라 요즘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점 양해 바랍니다^^




나이가 있다보니 국민학교 시절의 일이예요 ^^
여자아이지만 남자아이들과 더 잘 어울려 놀았고 아이들을 몰고 다니던 스타일이라 등교 후에도 방과 후에도 시간가는줄 모르고 즐겁게 살던 시절이었죠 
당시 집 앞에 있던 학교를 다니다가 부득이하게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제가 죽어도 이 학교를 다녀야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전학 대신 스쿨버스를 타고 계속 다니게 되었어요 
학교도 선생님들도 넘넘 좋아했거든요 


2학년 어느 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정신빼놓고 아이들과 놀다가 버스타려고 운동장 한쪽 버스타는 곳으로 왔는데 차가 한대도 없는거예요 
버스는 커녕 평소 차를 기다리며 줄 서 있어야 할 아이들도,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는 운동장에 저 혼자 덩그라니 서있는데 둥그런 운동장이 티비에서 보던 망망대해처럼 보였어요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핸드폰은 커녕 컬러티비도 없던 시절, 집으로 가는 방법은 학교가 가까울 땐 걸어갔고, 멀리 이사간 뒤로는 스쿨버스를 탔고… 
그 외의 방법은 모르고 살던 아이였는데..
무턱대고 우는 아이는 아니었던지라 열심히 머리를 굴렸건만 아는 것이 없으니 답이 나오질 않았어요 


속으로 어떡하지를 되뇌이고 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퇴근을 하시는지 더이상 나오는 사람이 없어진지 한참인 현관문을 열고 나오시네요?
집에 갔어야 할 아이가 그 시간에 텅빈 운동장에 혼자 서 있으니 선생님도 놀라신듯 왜 집에 안 갔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버스가 다 가버렸다고, 집에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은 “그래? 그럼 따라와” 하시면서 교문 밖 찻길 쪽으로 가셨고 저는 선생님이 집까지 데려다주시려나 보다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놓이며 다시 어린아이답게 도시락가방 휘두르며 따라갔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선생님이 집이 어느 동네냐고 물으셔서 ㅇㅇ동 ㅇㅇ공원 옆이라고 말씀드렸어요 


버스가 한대 왔고 선생님은 열린 문으로 기사분께 ㅇㅇ동 ㅇㅇ공원 가냐고 물으셨고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시고는 한쪽으로 비켜서시는거예요 
저는 엥?하고 잠시 머리가 멈춘 사이, 선생님은 “이 버스 집까지 가는거니까 걱정말고 정류장 확인하고 내려~ “라며 인자한 얼굴과 자상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고는 저의 손을 잡아 버스에 올라타는걸 도와주시고는 버스 문이 닫겼어요 
아… 이게 아닌데….
얼떨결에 탔고 버스는 움직이는데 저는 버스 손잡이를 잡은채로 굳어버렸어요 
워낙에도 혼자 잘 돌아다니고 친구들도 많고 모험심도 많아서 뭘 할때 거침이 없는 스타일이고 우리 동네 옆동네 구석구석 안 다녀본 데가 없고 엄마도 찾지 않는 아이였지만 한번도 안가본 길로, 경로도 모르고 까딱하면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한 곳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차를 타고, 혼자 가는 경험은 8살 저에겐 세상이 쪼개지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내내 식은땀 흘리며 그 자세로 굳은 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기사님께서 어린 아이라 신경쓰고 계셨나봐요 
저를 부르시며 “ㅇㅇ공원이라고 했지? 다음에 내리면 돼~”라고 아까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것과 같은 인자한 얼굴과 자상한 목소리로 얘기해 주셨어요 
다시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내가 집에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어디 모르는 곳에 내려 길을 잃고 엄마 아빠 동생을 다시 못볼까봐 앞이 깜깜했던 살떨리는 시간이 끝나가는구나 생각하니…
차문이 열리고 땅을 밟는 순간, 눈앞에 익숙한 동네 이웃집들, 가게들이 보였고 저는 와~ 살았다! 속으로 외치며 집으로 뛰어갔어요 


그날 이후로 세상이 조금은 만만해졌어요 
물론 8살 아이의 기준으로 말이예요 ㅎㅎ
과학책에서 보던 시커멓고 끝없는 우주같은 세상…. 몰라서 무섭고, 알려고 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안해본 것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세상 
학교, 친구들, 뛰어다니는 동네, 엄마 아빠 동생 우리집이 전부였던 저에게 학교와 집 너머 가보지 않아서 무서운 세상이 버스 한번으로 흔한 사람사는 동네로 바뀐거죠 
그 이후로 누구나 겪지만 개개인에겐 여전히 낯설고 험난한 인생사를 대면하고 통과할 때마다, 안해보고 안가봐서 두려운 마음이 들고 시도해보기 주저하게 될 때마다 제 눈 앞엔 어김없이 담임선생님과 그 옆에 선 8살짜리 제가 나타나서 말해줘요 
괜찮다고, 해보면 별 거 아닐거라고
그 선생님은 아시려나 모르겠어요 
사는 내내 한번씩 선생님 떠올리고 감사하며 기억하는 제자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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