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김건희 액세서리’ 된 캄보디아 아이

정치인들의 ‘봉사쇼’를 보는 서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짧은 시간 이뤄지는 일회성 행사라 어려운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안 되는데다, 평상시 삽 같은 도구를 잡아보지도 못한 손으로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 위선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사진에서 대통령 부인이 잡고 있는 것은 삽이 아니라 아이였다. 어려운 삶을 사는 그 먼 나라의 아이를, 일개 정치적 ‘쇼’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 과연 납세자의 돈으로 외교 현장으로 간 선출직 공무원의 배우자가 해야 할 일인가? 만약 대통령 부인이 이번에 방문한 소년 또는 소년이 수술받은 헤브론의료원을 예전부터 후원하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쑥 소년의 집을 찾아 아픈 소년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은 한 인간을 정치적으로 도구화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국내외 관찰자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이 ‘해외 봉사쇼’ 과정에서 대통령 부인이 네덜란드계의 유명한 영미권 배우인 오드리 헵번의 소말리아 아이를 안고 찍은 유명한 사진을 ‘벤치마킹’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을 계획된 ‘연출’에 동원하는 것은 주류 정치인 다수의 공통점인 ‘위선’을 넘어 아예 가탄스러운 비양심, 몰상식으로밖에 안 보이지만, 이를 통해 유명한 서양 배우를 ‘코스프레’하는 게 몰상식한 개인이 벌인 쇼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 지배층 상당수가 공유하는 의식·욕망임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제공해준다.
현직 대통령 부인과 달리 오드리 헵번은 유니세프를 위한 활동을 수년 동안 지속했으며, 의료원조 같은 분야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쌓은 인물이었다. 헵번이 국제적 구호활동에 나선 동기 역시, 불량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정책적 부실을 가리기 위해 벌이는 봉사쇼와 차원이 달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군에 점령을 당했을 때 기아에 시달리고 영양실조로 인한 질환을 겪어본 헵번이었기에 에티오피아나 소말리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어린이들이 겪는 곤란에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말했을 때 왠지 그 진정성에 믿음이 갔다. 한데 헵번으로 대표되는 구미권 주류에 의한 국제적 자선활동은, 그 활동을 벌이는 개개인의 진정성 여부와 관계없이, 세계 체제 주변부가 겪고 있는 기아·빈곤이나 유행병 문제의 기원을 호도하는 역할을, 심하게 이야기하면 구미권 주류의 ‘이미지 세탁’을 위한 역할을 했다.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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