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일요일 아침, 예기치 못한 시어머님의 전화

흐린 날씨에 모든 것이 차분히 가라앉은 조용한 일요일 아침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왜 예기치 못한 전화인가 하면 저희 어머님은 전화를 안하세요 
(대신 저랑 말이 잘 통하는 아버님이 전화를 자주 하시죠^^)
30년 넘는 저의 결혼 생활에서 어머님이 먼저 전화하신 적은 열손가락도 아직 못 채웠어요 ㅎㅎ
저희가 해외에 살 때 시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시려고 전화주신거 말고는 기억도 잘 안나요 
아, 저희 아버지 아프실 때 안부 및 힘내라고 전화주신 적 있고
카톡으로는 매일 위로가 될만한 음악과 좋은 말씀 그리고 안부문자를 보내주고 계셨지만 


어쨌든 오늘 아침 전화는 저희 아이 이야기를 아버님께 짧게 들으시고는 궁금함과 걱정으로 인한 것이었어요 
외국사는 아이가 잘나가는 큰 회사에 다니면서 자리잡았다 싶었는데 다른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살던 곳을 떠난다는 얘기를 들으신거예요
저희도 살짝 놀라긴 했지만 아이의 성향을 잘 알고, 지금껏 그렇게 써프라이즈로 심쿵과 어이없는 웃음을 주었지만 또 금방 맘에 드는 곳 찾아가곤 한 전적이 몇번 있던터라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어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남편과 같은 생각이고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데에 감사해요
하지만 또 손주를 사랑하시는 할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큰 결정 이면에 다른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걱정하실 수 있으시니 길게 이야기 못하시는 아버님과 아들인 남편을 믿지 못해 ㅎㅎ 아이 엄마인 저에게 전화를 하신거예요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는 세상이라 사랑받지 않은 손주들이 없겠지만 집안의 첫째 손주로 사랑도 많이 받고 아이가 맏형으로 든든한 모습도 보여주던 아이라 부모님이 이 얘기를 들으시고 실망하시거나 걱정하시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
그래서 이걸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말씀드린거죠 
어머님께서 다 들으시고 말씀하시길, “직장다니며 다른데 확정받고 그만두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나이많은 사람들 스타일이고 걔는 알아서 잘하는 아이니까 다 생각하고 했겠지… 이제껏 잘해왔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세계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자기가 좋은 것을 하는게 최고야…혼자서 자기 앞가림할 줄 아는 아인데 걱정 안해도 되겠네… 젊어서 혼자일 때 그런 경험 해보는거지 언제 하겠니… 아이가 생각도 바르고, 자기 갈 길 잘 찾아서 가고, 어디 내놔도 걱정안할만큼 잘 컸네… 네가 얼마나 열심히 키우고 가르치고 품어줬는지 내가 잘 알지.. 네가 아이들 정말 잘 키웠어, 정말 고맙다”
어머님도 나이가 드셨는지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있더군요


아이를 믿지만 세상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어서 가슴 한켠에 아이가 앞으로 부딪히고 넘어야 할 것들, 피할 수 없는 것들을 겪어낼 때 힘들어할 걸 생각하면 부모로서 할 수 밖에 없는 걱정과 공감이 있죠 
이미 우리도 겪어봐서 결국엔 지나가지만 겪는 동안은 그 통증의 정도와 내 능력 밖의 것을 마주할 때의 무력감을 알잖아요 
그래도 남편, 어머님, 아버님과 아이 이야기를 하며 느낀 건 우리가 가족 맞구나, 마음으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들이 있다는건 참 든든하구나
썰렁하고 시린 날씨에 언제든 껴입을 두툼한 외투가 두세벌 생긴 기분이예요
사실 언제나 좋은 분들이지만 ‘시’자로 시작된 관계라 아무래도 친정부모님 같은 친밀감이나 만만한 편안함은 아니었거든요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편안해졌지만 그래도 뭔가 2% 부족했는데…
이제는 그 관계가 다시 한번 한계단 올라가는 때가 되었나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친구도 있을만큼 저희도 나이든 어른이지만 흔들리지 않고 말없이 웃으며 손잡아주시는 더 큰 ‘어르신들’이 계시다는 건 정말 큰 안정감을 주네요 
세상에 넘치는, 사람들간의 비교와 무시와 시비와 질투와 비난과 뒷담화… 이런 것들 없는 청정지역에서 그저 쉬고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서로 살펴주는 가정과 가족이 있다는 것
성별, 나이, 가족내 지위에 상관없이 그저 가족의 한 사람이라는 것으로 충분한 관계
이제는 80보다는 90에 가까우신 여리고 작은 몸의 노인이지만 속사람은 거인처럼 크신 부모님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닫고 돌아보고 배웠어요 
지금은 하늘에 계신 친정아버지도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분명 시부모님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주저함없이 “괜찮아, 걔는 잘할거라 믿어!^^”라고 하셨을 것을 알기에 맘이 따땃해지고 배가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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