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마음공부 단상 -거부하는 것이 내가 된다

혹시 마음공부 도반님들 계신가요?
함께 나누고 싶어 글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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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바닷물과 노란꽃 그리고 나

" 바닷물이 파란 것은,
바다가 다른 색은 다 흡수하지만
파란색만은 거부하기 때문이다.

노란 꽃도 마찬가지다.
노란 꽃은 다른 모든 색은 다 받아들이지만
노란색만은 받아들이지 못해 노란 꽃이 된 것이다.

거부하는, 그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규정한다. "


어느 글을 읽다가 저 글귀에 팍 꽂혔다
전경린의 소설 중 한 부분 이라고 한다.
아마도 과거 어느 시기에 읽었다면 무심히 읽고 넘겼을 저 글귀가
지금의 나에겐 예사롭지 않게 딱 꽂혔다

< 거부하는, 그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규정한다. >

아 그렇구나..!
맞아 거부하는 그것이 바로 나(에고)의 색깔, 나의 모습이 되는 거였구나.
이렇게 에고가 거부함으로써 계속 지속되어
그것이 세세생생 윤회하는 거구나

그런데, 내가 거부한건 뭐지?
두려움, 수치심, 분노, 미움, 슬픔.........
그리고보니 사랑이 아닌 것은 다 거부한 것 같다.

이것들이 다양한 색깔이 되어 이 에고의 몸을 투과하여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 몸에 갖힌 채 이 에고의 몸 속에서 각 장기에서 고유의 진동으로 진동하고 있겠구나
각 차크라의 아름다운 빛의 발산을 막으며 나의 에너지장에 군데 군데 서려있겠구나..

한마디로 내가 거부한 것은 이었다.
사랑이 아닌 것은 모두 아픔 고통이었고
나는 이것을 거부한 댓가로 나의 에너지장에 덩어리 덩어리로 달고 다니면서
그것이 자극될때마다 그것의 존재를 알아채기는 커녕 그대로 둔 채
상대탓을 하고 원망을 하며 외부를 향해 항의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같은 것들을 계속 거부해왔던 것이고
거부했던 그것이 나의 색이 되었다. 내가 되었다.
파란 바닷물처럼, 노란 꽃 처럼..

그토록 미워하던 상대는
나의 에너지장의 얽힘을 풀어주기 위해
자석처럼 끌려다가와져서 무의식적으로 상처주는 말을 행동을
자신도 모른 채 하게 된 것인데.. 그때 나는 그런것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니 상상조차 할수 없을만큼 나는 마음에 대해 무지했고
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머리로 헤아리는 방법 밖에 모르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러한 무섭고 비참하고 끔찍한 순간들이
서로의 정화를 위한 기회로 하늘에서 만들어준 자리였음을
수백번쯤 반복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거대한 아픔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무수한 곳을 탐색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눈을 떠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화를 위한 기회임을 눈치를 채고 난 이후에도
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혹은 오래된 마음의 습관 때문에
기회를 수도 없이 놓치고, 알면서도 어쩔 줄 모르겠는 시간들은 계속되었다.

내가 싫다고 밉다고 나쁘다고 거부한 그 모든 것들이
그 끔찍한(?) 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것이었다니..

그렇게 내가 거부한 나의 마음들이 나의 내면을 꽉 채우고 있었고
나의 상황과 사건을 이루고 나의 인연을 이끌어오고
나의 삶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즉 내가 거부한 마음이 인생을 이루는 씨앗이었던 것이다.

아 어쩌면 그렇게 모를 수가 있었단 말인가..

내가 혹시 잘못 알아들었을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거라면 어쩌면 이렇게 세상사람들이 모를수가 있지?
내가 알게 된 그 어떤 지식보다도 내가 추구해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이것이 가장 위대한 앎이 아닌가?

착하고 좋은 사람.. 그리고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되기 버렸던
그 수많은 나의 마음들.. 그래야만 한다고 분명 세상에서는 가르침 받았었다.

울면 안돼, 미워하면 안돼, 착해야지, 화내면 못써, 그런 나쁜 마음 가지면 안돼.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 되어야지, 모범생이 되어야지, 남들보다 잘 살아야지..
노력하고 애써야 해, 완벽해야 해, 이기적인 되면 못써..

내게 주입된 이 모든 가르침들은 지금의 나의 시각에서보면 전부 하나씩 버려야 할 것들일 뿐이다.
나의 삶을 내가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이끌려가지 않도록
더 이상 노예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한 무의식 정화를 위한 관점에서 보면
저 수 많은 세상의 가르침,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말들은
전부 내게 멍에를 굴레를 지운 것에 불과하고, 내던져 벗어야 할 짐들이었다.

그래,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짐들이 이런 것이었구나
내가 외면해온 감정들, 나 스스로를 구속해온 수많은 관념들.

이러한 짐덩어리를, 멍에를 굴레를, 탁기를, 마음의 때를..
과연 내 스스로 벗기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자신이 없다.
결국 또 하느님께 기도하는 수 밖에..
...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 외에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능력으로
그 수많은 그 거대한 것들을 어찌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고 녹여낸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것들이 내게 닥친 바로 그 순간
깨어 바라보는 것.
오로지 그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뭔가를 애쓰거나 노력하는게 아니라는 것이.
더 이상 용쓰지 말고 그냥 힘을 완전히 빼고 알아만차리라는데.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 아닌가 싶다.

밀어내온 아픔을 고통을 딱 때맞춰 바라본다는게
어렵다면 어렵고 고통스럽다면 고통러운 일이겠지만
또 한편 이 얼마나 힘안들이고 쉬운일인가 싶기도 하다
죽지 않고 살아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아무 환경도 장비도 돈도 필요없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그토록 무의식의 같은 패턴에 자꾸 자꾸 딸려가는것을 보면
그토록 극복하는 사람들이 적은것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험난한 길이기도 하다.

이 방향은 세상과 거꾸로 살아야 하는 방향이었다.
마음공부를 시작할때 아니 마음공부라는 거창한 말도 모른 채
그저 나의 괴로움을 벗고자 이리저리 탐색을 시작할때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아니 그 반대였다.
그 당시에는 어서 나의 약한 마음이 치유되어 심신이 모두 건강해져서
세상에 나가서 아주 멋지고 훌륭하게 남들보다 더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정신차리고 보니 내가 걷고 있는 길을 그 정반대길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아무리 초라하고 별볼일 없는 나여도 그냥 그런 나를 있는 그래도 진정 사랑해주는 길이었다.
내가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내 마음이 영향받지 않는 그런 길이었다.
세상의 시각인 서로 비교하며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그런 잣대를 걷어치우는
오르락 내리락 의 수직적인 시선을 완전히 걷어치우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수평적으로 동등한 존재였다.
모두가 다 같은 무의식을 공유하며 누가 좀 더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것은
각자의 착각일 뿐이었다.
누구나 똑같이 신성을 내부에 품고 있으며
동물적인 면과 존귀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각자의 내면에 따라 자신이 만들어낸 우주속에서
나름의 고유한 여정에 따라 모두 한 곳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음을 ..
나는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비록 같은 지점에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있더라도
그 넘어짐이 바로 스승이 되어 갈 길을 알려주는 그런 완벽한 여정의 길을 가고 있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하여 착한 아들 딸이 되어
학교가서는 열심히 열심히 공부하여 모범생이 되고 1등을 하고
최상의 대학교를 졸업하여 남들 부러워하는 곳에 취직하여
돈도 벌고 인정도 받으며 상위 몇퍼센트의 풍요로운 삶을 사는
남들보다 잘나고 안락한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길이 세상이 이끄는 길이었다면
새로운 이 길은 과거에 내가 추구했던 길과는 전혀 다른 길.
위를 향하게 했던 그 모든 멘탈과 정서를 해체시키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광야의 유혹이 갑자기 생각난다.
세상에서 소위 좋다고 하는 것들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하느님과는 정반대로 멀어지는 이 길.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을 이겼다.. 고 하신 말씀도 어쩌면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갑자기 이해가 조금 갈 것 같다.


파란색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파란색이 된 바닷물도
노란색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노란색이 된 노란꽃도 너무나 아름답기만 한데
어쩌면.. 우리도 지금 이 자체로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비록 두려움을 아직 못받아들이고 있다 하더라도
비록 수치심, 분노, 미움, 슬픔, 질투....를 못받아들이고 있다 하더라도
어쩌면 그러한 우리도 바닷물, 노란꽃에 못지 않게 아름다우리라..
부족해보이는 이 자체로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부족하고 불완적하기 짝이 없는 육안으로 보지 않고
영혼의 눈으로 본다면
혹은 무지개색으로 보인다는 우리의 에너지 몸으로 보면
무엇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우린 이미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지 않을까..
무지개색이 환상적으로 섞인 아름다운 색의 향연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러한 눈으로 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보고 싶다.

그리고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그 모든것을 받아들일때
그리하여 투명한 흰 빛. 온 세상을 비추는 한줄기 빛이 되어 뻘어나갈때
그 광휘는 얼마나 찬란할까..
그저 아직은 상상만 해볼 뿐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울지..

오늘은 그냥 한가지만 기억하고 싶다
세상만물은 각자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색)이 있기에
세상의 모든 색과 형상은 존재하는 것이며
이미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다.

받아들이면 받아들이는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로 완벽하고 아름답다.

사랑만을 갈구하는 애정결핍 두려움 덩어리인
나도 너도, 그리고 세상사람들 모두도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래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두려움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

하지만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답다.
두려움 덩어리 그 자체도 아름답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것은 없다.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지금 이대로
모든것은 완벽하며
모든것은 사랑이다.
모든것은 사랑을 주거나 사랑을 원하는 표현일 뿐이다.

내가 눈앞의 그 무엇인가를 거부할때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며
사랑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며
생명의 흐름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그냥 받아들이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오직 받아들일 뿐.
내 앞에 무엇이 닥쳐도
받아들이면 살 수 있는 것이다.

안좋은 일처럼 보이는 그것을 그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서
생명의 흐름에 올라탐으로써 나의 생명력이 살아나
내 앞길을 펼칠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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