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강남순 교수의 진정한 애도의 글

이태원 사태, ‘낭만적 애도’가 아닌 ‘진정한 애도’를>

1. 어제와 오늘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메일과 텍스트 메시지를 받았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염려하면서 한국인인 '강남순'을 떠올렸는가 보다.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주요 신문들은 물론 내가 매일 보는 NBC 저녁 뉴스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도 한국에 관한 뉴스를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 뉴스에서도 이태원 사태를 제일 먼저 다루고 있다.

2. 한국 시각으로 10월 30일 오후 5시 30분 서울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외국인 26명을 포함하여 총 154명이라고 한다. 사망자 중 2명의 미국인이 포함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질과 나는 서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이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전한다”며 그의 트위터에 바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깊은 애도와 연대의 글을 남겼다. 한국의 현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가 여러 가지로 살펴보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메시지만 있을 뿐 아직 찾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3. 이태원 사태를 좀 더 자세하게 알고자 SNS를 살펴보니, ‘지금은 애도만 하고,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자’는 포스팅이 도처에 있다. 이태원 참사의 ‘근원적 원인이 무엇이며 그 사태의 책임은 누구인가’라는 물음 자체를 ‘정치적’이라고 보면서, ‘지금은 애도만 하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애도란 ‘동정의 애도’가 아니다. 오직 슬퍼하고 불쌍해하기만 하자는 것은 어두운 측면을 외면하는 ‘낭만화된 애도’일 뿐이다. 낭만화된 애도는 단지 고통을 당한사람을 동정하는 것에 머물 뿐, 그 죽음과 고통을 야기한 근원적인 원인에는 무관심함으로서, 결국 ‘무책임한 애도’일 뿐이다.

4. ’‘진정한 애도’란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에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다. 동시에 그러한 참사를 야기시킨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책임의 소재’는 무엇인가를 세밀하게 조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굳이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스트 운동의 모토를 상기할 필요없이, 개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이미 ‘정치적’이다. 여기에서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단지 정당정치의 영역이라는 의미 만이 아니다. 모든 일들에는 특정한 ‘권력’이 개입되며, ‘특정한 관점과 결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애도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면밀한 조명, 분석, 그리고 책임의 소재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5. 공권력의 사용과 사회정치적 에너지의 사용은 그러한 결정권을 지닌 사람들의 ‘우선순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할로윈 축제가 지난 5년 동안에도 늘 있었고, 올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고 하는데, 왜 2022년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국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공직에 있는 이들은 무슨 예상을 했던 것인가.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공관이 아닌 사저에서 출퇴근하면서 매일 7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하고 있으며, 이러한 엄청난 경찰들을 동원하게 하는 그 정치지도자의 우선순위 속에 ‘국민’은 안중에 있는가. 그래서 엄청난 인원이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이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도 안 되는 경찰이 동원되었는가.

6. 민주사회에서 공권력이란 개인적 이득이 아닌, ‘공공의 이득 (common interest, common good)’을 확대하는 것에 그 우선순위를 두라고 국민이 부여한 권력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엄연히 공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사저에서 출퇴근하고자 결정했다면, 그 지도자는 공적 결정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 결정이 야기하는 출퇴근 과정에 들어가는 공권력의 ‘낭비’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과 적절한 조처를 취했어야 한다.

7. 한 사회의 공권력이나 공공자원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도자의 막중한 책임중의 하나는, 그러한 제한된 공권력과 공공자원을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하고, 어떤 가치를 적용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가이다. 이태원 참사의 ‘거시적 원인’은 막중한 책임을 방기한 지도자의 공권력 낭비에 따른 것이기도 한다.

8. 서울 시장은 물론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는 ‘한국’이라는 배를 이끌어가는 ‘선장’이다. 그 선장이란 순조로운 항해만이 아니라,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다. 이태원 사태의 ‘원인과 책임의 소재를 따지는 것은 정치적이니 지금은 애도만 하자’는 접근은 현재와 미래에 제2, 제3의 ‘이태원 사태’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애도’일 뿐이다.

9. 경찰 서장, 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오직 한 ‘개인’이기만 할 수 없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그 ‘정치적 자리’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진 자리며, 그 권력을 가지고 ‘공공의 이득’을 그 우선순위로 생각해야 하는 ‘공적 책임의 자리’다. 이러한 공적 책임의 거시적, 그리고 미시적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공권력 사용의 우선순위를 늘 정해야 하는 지도자 위치로부터 스스로 사퇴하고, 공적 삶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 삶을 영위하면 된다.

10. 할로윈 축제가 ‘서구’에서 왔다면서 또는 ‘비기독교적’이라며 이 축제를 즐기려고 간 이들에 대한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비난’은 사태의 핵심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점이다. 또한 지금은 ‘애도만 하자’라는 것도 매우 무책임한 애도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과 고통을 방치한 공권력의 문제를 거시적으로 또한 미시적으로 조명하면서, 그러한 참사가 이후에 일어나지 않도록 그 감정적 애도를 확장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애도’한 죽음과 고통의 원인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함께 (with)’ 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 고통을 야기한 원인과 책임의 소재를 다층적으로 조명하면서 ‘비판적 문제 제기’를 동시적으로 수반해야 한다.

11. 살아남은 자들은 먼저간 사람들의 삶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다시는 그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비판적 문제 제기를 하면서, ‘책임적 지도자’가 한국 사회를 이끌도록 연대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러한 ‘진정한 애도’—그 애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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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 대통령의 애도의 트위터
https://twitter.com/POTUS/status/1586484308809744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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