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펌글) 이태원 갔다온 사람 경험담

방금전까지 이태원 있다 왔다.



오늘 이태원 갔다가, 방금 집에 도착했다.

그냥 큰 행사기도 하고 사람 많이 몰리니까, 사람 구경이나 할 겸 혼자 놀러갔다 왔음.



집에 도착하고 나서 소식 들었는데, 충격적이더라. 나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전혀 몰랐음.

사고 현장 주변에도 있었는데, 사고 난 건 못 봤음.


암튼 포텐글이랑 덧글 보다가 몇 자 적어봄.



1. 10만명 인파가 몰리는데 경찰 통제가 없었냐?


경찰 통제 있었음.


나는 저녁 시간쯤 갔는데, 국방부에서 녹사평 가는 길이 진짜 엄청 막히더라.


나는 '아니 밤에도 이 지랄로 데모를 하나?' 했는데, 알고보니 다 이태원 가는 길에서 막히는 거였음. 반포대교 빠지는 쪽으로는 차 하나도 안 막히더라. 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빠져서 주변에 주차하고 올라감.


차량이 그만큼 막히는 만큼, 당연히 이태원 가는 길에도 경찰차들 곳곳에 있었고, 해밀턴 앞 사거리에도 경찰분들께서 차량, 인파 통제중이었음.

통제를 안 하면 아수라장인 수준이었거든.


다만, 이런 큰길가에만 통제중이었고 사고 난 해밀턴 뒤 술집거리에는 통제는 없었음.

그런데 그게 꼭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게,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냥 길이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고 보면 됨. 그 좁은 길이.


나는 그 골목길 상권 자체를 통제하는 게 아닌 이상, 경찰이 통제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음.

그리고 지금은 사고가 났으니 결과론적으로야 통제했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만, 거기 상권 입장에선 할로윈이 대목인데, '여기 사고날 수 있으니 통제함 ㅅㄱ'라고 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함.





2. 저기는 사고가 났는데도 춤추고 미친 거 아니냐?


사고 난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음.

실제로 나도 집에 도착하고서야 주변에 연락 받고 알았음.


인파가 워낙 몰리다보니까 인터넷 자체가 안 터졌다.

마라톤처럼 좁은 장소에 사람 많이 몰리는 행사 가본 사람들은 알 거임. 어느 정도 인파 모이면 인터넷 안 터짐.


나는 편의점에서 뭐 결제하려고 하는데 페이코 삼성페이 결제창이 안 떠서 결제를 못 했음.

그 정도로 인터넷이 안 됐다.


특히 그 심정지 사고 발생한 그 골목,

거기서는 나는 카톡도 안 보내지더라.


그니까, 현장에서 사고가 난 걸 보지 않는 이상, 한 골목만 지나면 음악 소리에 묻혀서 사고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는 거임.


주변에서 연락도 못 받지, 인터넷이 안 터지는데.

나는 이태원 클럽에 있는 다른 친구한테 전화 걸려고 했는데, 전화야 가까스로 걸렸다가도 통화도 좀 끊겨서 들리고, 그쪽에선 내 목소리가 아예 안 들리는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만 하더라.


그니까 사고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사고 사실을 모르니까 그냥 옆골목에서도 춤추고 술먹고 클러빙 하고 있는 거임.




3. 사고 전 이태원 현장 상황은 어땠냐?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음.

밀고 밀치고,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빠져 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음.

왜냐면 앞으로 갈 수도, 옆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가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상황이었거든.


그냥 내 앞뒤양옆에 다 사람으로 차있는데, 그냥 한 방향으로, 뒤에서 미는대로 가는 거임.

근데 앞에서는 안 가. 왜? 앞에서는 또 코스프레 분장한 사람들 사진 찍고 있고 그러고 있거든. (이게 잘못된 건 아님.)


내가 그 골목에서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쯤, 누가 뒤에서 엄청 밀기 시작함.

내가 장담하는데 진짜 '일부러' 미는 거였음.


맨 뒤의 누군가가 미니, 앞에서는 또 밀리고, 거기서 밀리니 또 그 앞에는 또 밀리고, 그렇게 되는 상황이었음.

사람들은 막 소리지르고 "밀지마 Tlqkf!!"하고 있고, 그쯤 되었을 때 나는 거의 빠져나와서 '다시는 저 골목으로 안 가야겠다' 생각만 함.



그러고는 큰 길쪽으로 나와서 걷기 시작했는데 구급차 사이렌 엄청 울리더라.

근데 구급차만 오는 건 아니고, 소방 펌프차랑 구조대 차량도 같이 왔음.

길바닥에 술처먹은 사람들 널려있는데, 비켜주겠냐? 암튼 경찰차가 먼저 길 뚫어주고, 그 다음에 구급차가 지나가는 식으로 했음.


보면서 '어디 불났나보다, 차가 막혀서 저기는 어떻게 가냐' 했는데, 그 뒤로도 계속 그냥 구급차가 오더라고.

'아이고, 오늘따라 신고가 많이 오네'하면서 나는 다른 골목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좀 더 사람 구경하다가 '슬슬 집 가볼까'하고 집에 옴.


녹사평쪽에서 길이 진짜 많이 막혔는데, 녹사평만 지나니까 길이 뻥 뚫리더라. 아무래도 녹사평쪽에서 차가 다 밀려있다보니까, 그 뒤로는 뻥 뚫렸던 것 같음.


집에 와서 밀린 카톡 보는데, 난장판이더라고.


뭔 술집 2층에서 찍은 것 같은데 길바닥에 살색 물체가 많고, 구급대원 경찰분들은 cpr치고 있고,

나는 '여기가 내가 갔던 곳이 맞나? cpr 훈련인가? 그걸 여기서 하는 게 말이 되나?'하고 있는데 다른 각도 영상 보니까 토 쏠리더라.



처음에는 포텐글 보면서 '여기가 내가 지나온 곳이라고?'하는 비현실적인 감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아는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무섭고, 거기 현장에 있으면서도 내가 전혀 몰랐던 거니까 그것도 역겹고, 현장에서 사진 많이 찍어줬거든. 인스타 아이디 공유하고, 그랬는데... 나중에 사진 보내주기로 했던 그 사람들도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 여러가지로 메스꺼웠음.


지금도 글 쓰면서 옆에 포텐글 새로 올라온 거 제목은 보이는데, 끔찍해서 더는 못 눌러보겠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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