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아침부터 묵 한접시 썰어먹었어요 ^^(feat. 평산 나들이)

글이 길어요^^
————————-


원래 아침을 잘 안먹는데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아우성치는 위장의 소리에 귀기울여 어제 산 홈메이드 도토리묵을 꺼내 한접시 썰었습니다 
야들야들 보들보들 탱글탱글~
평산 어르신들께서 직접 쑤신 도토리묵인데 농도와 맛이 기가 막힙니다!!
되직하지도 않고 히마리(힘의 전라도 방언입니당) 없이 입에 오기도 전에 끊어져 젓가락든 손이 경련을 일으킬 일도 없는 적당한 정도를 정확히 꿰고 쑤어진 묵입니다 
묵만 먹어봐도 평산분들이 어떠신지 짐작이 갑니다 ㅎㅎ


네, 어제 여러 커뮤에서 한마음으로 모인 좋은 분들과 평산에 다녀왔습니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면서 황금빛 붉은빛 단풍이 온 산과 동네로 번져가는 모습에 의도치않게 단풍놀이까지 겸해가며…
속시커먼 어둠의 유투버들의 끊임없는 괴롭힘 속에서 생활하고 계신 평산 주민분들에게 그분들의 괴로움을 공감하고 원래대로 마을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사람들이 이만큼 있다는걸 보여주는데 이 몸 하나 보태보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저는 가서 한보따리 선물만 받아왔네요 


그 동네는 저에겐 처음가는 곳이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정말 자그마한 마을이예요
조그만 2층 마을회관에 도착해 앞마당에 내리고 보니 높디높은 영축산이 한쪽에 떡하니 자리잡고 두 팔 벌려 감싸안은듯 하늘이 동그랗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 마을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동그란 하늘과 산따라 빽빽히 자란 나무들과 은빛 억새풀, 그리고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열린 주민들의 집 몇채가 사이좋게 앞뒤옆으로 붙어있는게 전부였어요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일 수 밖에 없는 곳이 흑과 백 강렬한 원색으로 옷과 썬글라스, 넥타이, 모자 등을 차려입은 우악스러운 사람들의 무리가 문대통령을 핑계로 확성기를 통해 고성에 질러대로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며 단체로 지급된듯 똑같이 조악하고 무시무시한 문구와 디자인의 현수막으로 차없이 조용한 산동네 찻길에 도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많이 속상했습니다 
윗집에서 쿵쿵대기만 해도 사람이 짜증에 스트레스 만땅인데 그 조용하고 작은 동네를 우악스럽게 휘젓고 서로 원망하고 싸움을 부추기는 모습들이 혐오스러웠습니다 


그런 힘든 생활을 하고 계신 주민들임에도 멀리서 왔다고 저희들을 얼마나 반겨주시던지…
82분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버스도 정류장에서 마을회관까지 편안하게 눕다시피하며 가서 황송했는데 본적도 없는 저희들을 반겨주시고 앞마당에 풍선이며 분홍깃발로 귀엽게 장식해놓으시고 무대와 악단과 연회? 자리까지 세팅해놓으신걸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특별히 저는 마당에 자리잡으면서 동네 아주머니께서 무대 옆 한쪽 플라스틱 의자 위에 동네 들판에서 자라는 가을빛 짙은 들꽃과 풀을 모아서 흐드러지게 꽂아놓으시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서울 삐까번쩍한 고급 건물에 비싸고 예쁜 꽃으로 잡지화보 수준으로 꽂아놓은 꽃들도 많이 봤지만 그것들에서 보지못한 생기와 자연스러움을 보았어요 
저런 여유와 안목을 가지신 분들이 사시는 동네 평산!


어느정도 다들 자리잡고 앉은 뒤 ‘평산마을 일상회복과 평화를 기원하는 잔치’가 시작되었어요 
가족들끼 오신 분들도 계시고 친구랑 혹은 혼자 오신 분들도 많았고 서로 처음보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같은 마음으로 와서인지 서슴없이 어울리고 웃고 떠들고 밥도 나눠먹고 춤추고 노래하고… 흥겹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끄럼타고 노래방도 안가고 혼자놀기 달인인 제가 그 분위기에 떠밀려 앞에 나가 빤짝이술 흔들며 빽댄서까지 하는 엄청난 일도 벌어졌다죠 ㅎㅎ
주민분들은 다들 나이도 지긋하신데 온갖 개인기 총동원해서 탈탈 털어 다 보여주셨고요 
노래에 댄스에 섹소폰, 장고, 오카리나, 풍물패, 선물과 구수한 입담까지… 


물론 어제의 하이라이트는 문대통령의 출현!
진행하시는 이장님과 동네분들 일순간에 외면하고 달님 환호를 외치게 만드시는 민폐아닌 민폐를 끼치시고는 ㅎㅎ 간절히 원하는 청중들의 압박에 못이겨 오손도손 모여있는 자리 한가운데 오셔서 귀한 말씀 전해주셨어요 
따뜻한 악수와 언제나 그랬듯 진심어린 은빛 미소와 함께^^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여기저기서 흐르는 개천들 하천들이 ‘ 다 모여’ 강을 이루고 다 모여서 바다가 된다는..
우리가 82뿐 아니라 온오프라인에서도 흔히 보는 모습들이 서로 다르다고 외면하고 하찮게 여기고 배제하는 태도들이죠 
참 시끄럽고 힘든 세상인데 그래도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어제일이 생생해 쓰고싶은 말이 한가득이라 아침부터 긴글 적게되어 죄송하네요^^
그래도 이렇게 적는건 역시 사람이 괴로움이기도 하지만 힘이기도 하고 사람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예요 
요즘 ‘내’가 중요시되다 보니 내가 싫은 것,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가차없이 끊어버리고 혼자서 즐기며 사는게 최고라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내가 혼자라는 것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혼자라는 말이 성립가능한 것이고 내가 혼자 다 해결하는 것 같아도 실은 누군가의 크고작은 도움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할 때 뭔가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굴도 모르는 82님들의 물질적 도움과 어제 여행을 맡아서 계획하고 진행해주시느라 자잘한 곳까지 신경쓰신 대장님들, 모르는 사이지만 행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물품 준비하는데 수시로 손걷고 도와주신 분들, 동네 어르신들 부축해드리고 꽃핀도 꽂아주시고 흥돋궈주신 분들… 모두모두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처음보는 저희들에게 아낌없이 친환경 먹거리들과 맛난 음식 준비해주시고 각종 장기로 웃게 만들어주신 마을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덕분에 집에 와서 이리 탱글탱글 구수한 묵도 먹고 싸주신 청과들도 가족들 식재료로 쓰고
마음이 통한다는게 참 중요하고 힘이 된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그래서 행복했던 평산 나들이였습니다 
저는 82없음 안돼요~~~

최근 많이 읽은 글

(주)한마루 L&C 대표이사 김혜경.
copyright © 2002-2018 82cook.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