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남편의 " 괜찮아"

 성취지향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저 역시 그런 성향을 좀 타고 난줄 알고 자랐어요. 
초등 겨울방학 때 올백을 맞은 학생들에게만 주는 우등상을 못타면, 
날이 깜깜해지도록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면서 시간을 보냈거든요. 
집에 들어가기 무섭고 싫었던 마음이었어요. 

미혼때도 성취가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던 것 같아요. 
일하면서 인정도 많이 받았는데 늘 버거웠던 기억은 있어요. 

남편은 감정의 동요가 그닥 없는 사람이예요. 
누나 많은 집의 막내, 사교육에 열정적이신 어머님, 세상 착하시고 동정심이 많으시나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어느 때는 철없는 막내아들이고, 어느 때는 철든 효자고, 아내를 위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어요.
살다보니 남편의 말이 저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걸 느낍니다. 

몇가지 에피소드. 

미혼때 다니던 회사가 막 세를 확장하던 시기에 충남 어딘가에 공장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알아보지 않고 
땅을 샀다가, 사기를 당했던 적이 있었어요. 
저도 벌만큼 벌던 때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때라 남편과 상의없이 샀더랬죠. 
아침에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그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있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던 남편이 내용을 알게되었는데, 
" 괜찮다.. 괜찮다. 돈은 벌면 되지.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냐. 괜찮다.. 내가 그만큼 더 벌어오마. " 

힘들게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가 많이 아팠어요.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 있는데 행복해보이는 산모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아이낳고 조리할 시간도 없이 삼성서울로 매일 출퇴근하면서 아이를 돌봤는데, 
하루는 아이가 열이 올라서 너무 정신없이 병원에 이동하고 보니, 
제가 신발 한쪽을 안신고 접수를 하고 있었더라구요. 
반차내고 삼성서울로 엄마를 모시고 오던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엄마만 내려주고, 
다시 뒤돌아가더니, 20분 인가 뒤에 예쁜 슬리퍼같은걸 사왔더라구요.. 
대기실에 앉아있는 저에게 그 신발을 신겨주면서 
" 괜찮아. 치료할 수 있는게 어디야.. 너만 괜찮으면 정말 다 괜찮아 질꺼야." 하던 .. 
그때는 왜 이사람은 모든걸 다 이렇게 낙관적으로 보는걸까 싶으면서도, 
감정의 동요없는 그 모습과 얼굴이 참 위로가 됬네요. 

요즘 아이가 또 아파요. 그 와중에 제가 실수한 부분도 있었어서 제가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자는 것도 잠을 못자요.. 
제가 실수한 걸 알았을 때 제가 손이 너무 떨리고 미칠 것 같아서 소리도 못질렀는데, 
" 괜찮다. 잘하려고 하다보니 일어난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아이가 문제없고, 
설사 문제가 생기더라도 치료하면 되고, 병원도 가까운 곳에 있는데, 걱정하지 말아라. 
너의 표정과 감정을 아이가 느끼는 것이 더 큰 문제일수있다. **아, 괜찮아.. 괜찮다.. 
만일 똑같은 실수를 남편이 했었더라면 제가 이렇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전 절대로 못했을 것 같아요. 
온갖 악다구니로 잘못한 것에 저의 불안을 덮어서 쏱아부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야근도 많고 출장도 많은 저의 첫 직장을 지속할 수가 없었어요.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고 베이비시터 이모님의 만행을 cctv로 확인했을때 
아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게 이런기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회사를 그만둬야겠다 마음먹었을때... 
어렸을때부터 가난이 너무 싫어서 어떻게든 내 힘으로 나를 건사하겠노라 마음먹었었는데 정말 그땐 그거말고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았어요. 
누구하고도 상의하지 않았어요. 다들 말릴게 뻔했거든요.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 복지도 좋고, 제 학벌에 그런회사 다시는 못들어갈께 뻔한.. 
사직서를 내고 돌아오던 길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고 막막한 느낌이 들던지요. 
왜 그만뒀나는 생각나지 않고 그저 두렵고 막막하고 저 혼자 내던진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이 마중나와 우산을 씌워주면서 상의하지 않았던 나에게 서운함을 느낄법도 하건만, 
" 그동안 고생많았다. 괜찮다. 그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용기와 결단에 박수치고 싶다. 속앓이하는데 도움되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 우리는 더 괜찮을꺼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잘했다" 
반드시, 다시 취업하리라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 어깨에 우리가정을 혼자 짊어지게 하지 않으리라. ㅎㅎ 
온몸불살라서 10년 육아했고 아이들 조금크면서 5년동안 공부했고 다시 일한지 2년됬네요.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봤어요. 
남편의 " 괜찮다"라는 저 말이 저는 그때 마다 정말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불안했던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다음을 생각하게 하고, 떨리는 마음을 잡아주고 쉼호흡을 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생각할 수 있었고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그때에는 왜 일을 해결할 생각을 안할까. 왜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을까, 왜 자신의 의견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까... 정말 안맞는 사람이야.. 하고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떠한 행동보다 제 마음에 오래 남아있네요... 
잊어버리고 살다가 퍼뜩 생각난김에 82에 소소하게 적어놓아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자주 생각해요.. 
불안해하고,, 지적하고 설명해주고 그 방향이 아닌 것 같아 바로잡아 주고 싶을때.. 
나의 어떤 설명과 안내보다. 아마 이 말이 더 오래기억되고 위로가 될 것이다..

 " 괜찮아" " 너 잘못이 아니야. 잘하고있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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