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결혼 32년차 50대 부부의 주말 아침

아침 5시 반
덮고 있는 이불이 살짝 들썩입니다 
깼나 보다..
저도 이 시간이면 알람없이도 절로 눈이 떠지는 터라 제 몸 구석구석을 눈감은채로 깨웁니다 
팔 다리 몸통 척추를 따라 기상신호를 보내고 아침 맞을 준비를 합니다 
남편은 주말이란걸 아는 터라 자동적으로 가는 신호를 안보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조금 더 자려나 봅니다 
그러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습관대로 깨어나려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밤새 품었던 개스도 내뿜습니다 
저는 씨익 조용히 웃습니다 
우리집만큼, 나만큼 편안한 데가 없는가보다.. 귀엽군.. 중얼거립니다 
남편도 뜨끔한지 갑자기 돌아누워 저를 보며 씨익 웃습니다 
딱 백일 아가가 우유먹고 흡족해하는 얼굴입니다 ㅎㅎ
저도 같이 웃어주고 서로 안아줍니다 


종알종알 하루밤 사이에 나누지 못한 혹은 잊고 있었던 이야기로 폭풍수다를 집약해서 한 뒤 두 사람은 일어나 각자 볼 일을 보고 씻은 후 아침으로 뭐 먹을까 의논합니다 
어제 사놓았던 (그 집이 일요일은 닫는지라ㅠ) 맛있는 치킨 파니니를 데우고 부라타 치즈에 집에서 키우는 바질 잎을 얹어 발사믹 비니거를 뿌리고 남편은 커피를 만듭니다 
지~잉, 거실에서 커피머신 돌아가는 소리에 멀리 부엌에 있는 저는 나지도 않는 커피향을 맡습니다 
남편은 티비 옆 기기를 소환합니다 
“지니야, kbs 클래식 fm 라디오 틀어줘~“
기계들과 어울려 사는 요즘 세상입니다 
창가 테이블로 각자 접시와 자기몫을 챙겨와서 착착 세팅을 하고 앉습니다 
흐리지만 나름 분위기있는 하늘 아래 한강과 크고 작은 나무가 이룬 숲처럼 갖가지 건물들이 숲을 이룬 서울동네를 내려다보며 아침을 먹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지기는 커녕 꿈쩍않는 아침상이지만 살다보니 이렇게 가벼운 상차림이 좋습니다 
음악도 좋고 새벽같은 흐린 하늘도 좋고 커피도 맛있고…
평온하고 평화로운 아침입니다 


남편은 일년전부터 재미붙인 취미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사진도 보여주고 자기가 만든 것도 보여주며 남들이 만든 작품세계와 테크닉에 대해서도
어제 올라온 미국프로야구 얘기도 하고
예전엔 재미없다고 눈길도 안주던 것들에 이제는 귀를 열어줍니다 
그 내용은 재미없을지언정 그 얘기를 하는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귀를 열어줍니다 
신난 남편은 기분이 좋아 제 자리로 와서 가슴에 안아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뽀뽀도 해줍니다 
저의 것이어야 맞을듯한 갱년기가 요즘 엉뚱하게 남편에게 간듯합니다 
말도 많아지고 집안 화초들을 보며 말도 시키고 잎사귀도 아기다루듯 쓰다듬어주고.. 뜬금없이 새로운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산세베리아 잎 하나가 밑둥이 썩어가길래 뽑으려고 했더니 남편이 말립니다 
잔인하다고.. 며칠 더 두고 보자고 옆의 성한 잎을 지지대 삼아 기대어놓습니다 
앞날이 예견되지만 그냥 둡니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착착 그릇을 나르고 설거지하고 옷을 챙겨입습니다 
동네 한바퀴 돌려고
기온 변화에 민감한 남편에게 따뜻하게 입으라고 말해줍니다 
유리같은 남편입니다 ㅋㅋ
아프면 제가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숲 속을 걸으며 한강을 바라보며 아이들 이야기를 합니다 
왜 나이먹어도 부모에게 자식들은 아가인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다 커서 독립한 직장인들이 되었지만 저희의 기억 속에 그 아이들이 우리 품에 안기던 최초의 모습들이 너무나 강렬합니다 
핏덩이가 뽀얘지고, 조건없이 햇살미소 날려주고 오줌 줄기도 날려주고, 바닥치며 기다가 벌떡 일어나 달리던 변화무쌍하던 시절들이 너무나 찐하게 새겨진 탓입니다 
뭔가 뿌듯하면서도 벅차면서도 그리움이 살살 밀려듭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것을 느꼈는지 손을 잡고 걷습니다 
연애 시절 추운 겨울 제 손을 잡고 주머니에 넣고 걷던 시절의 따스함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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