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정없는 엄마의 치매

50대 외동딸입니다. 자영업하며 바쁘게 살아요.
부모님이 절 늦은 나이에 낳으셨고, 육아는 어른 기준으로 키우셨습니다. 알아서 잘하면 당연한 걸로 알고 부족하고 모자라면 체벌과 무시를 하셨지요. 교회 다니며 남들 기준에 맞는 삶을 살기 원하셨구요.
5살에 동네 남자아이랑 싸워 제가 맞았습니다. 때린 아이 집에 찾아갔더니 그집 할머니가 "우리애가 오죽하면 때렸겠냐" 하시니 두말 않고 오셔서 맞은 저를 혼냈습니다. 그 뒤부터 오죽하면 맞을 짓을 한 애가 되어 엄마 망신 준 애로 자랐습니다. 교회일로 바빠 주말에 외식도 여행도 없이 사신 부모님입니다. 교인들과의 친교로 복을 받았다 생삭하셨지요.
7살때 수영장에 갔다 수영미숙으로(튜브가 없었어요) 허우적대다 누가 도와줘서 나와 집에 가자 했다 비싼돈들여 오니 제대로 못논다고 혼나기도 하구요. 한마디로 아이 마음과 상황을 헤아려주지 않는 이셨습니다. 사업실패로 이후 재기로 아빠는 가장의 권위만 남은 분아었고, 엄마는 오로지 교인들 만나며 교회생활의 리더역할만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제가 사고가 나서 입원한 적이 있는데, 엄마는 보험한단 이유로 당시 실직했던 아빠가 저를 돌봤습니다. 이상했던 건 병원에 한달 있는동안 엄마는 교인들 방문하던 주말에만 병실에 왔다 손님처럼 가버린 겁니다.
나중에 아빠 편찮으셨을 때도 간병과 병원 뒷바라지는 오로지 어린 아이들 키우는 제 몫이었습니다. 당신은 허리가 아파 병실에 못 앉아있는다구요.
엄마가 저에게 바란 건 자랑할만한 딸이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이후엔 돈 잘 버는 남편만나 친정에 잘해주는 걸 바라셨지요.
연애하던 때 지금 남편이 얼굴이 검다고 반대하고, 제가 파출부도 없이 혼자 살림한다고 교인들에게 부잣집에 시집못간 어리석은 딸울 둔 본인의 박복함을 한탄하던 분이 제 엄마입니다.

남편 출장으로 첫아이 유도분만할 때 보호자로 오셔선 진통하는 제 옆에서 코골며 주무시다 결국 병원건물 지하상가로 쇼핑하러 가고,
둘째 낳으러 가야해서 어쩔수 없이 하루 맡겨본 게 손주랑 지낸 전부입니다. 그러면서도 주말마다 집에 오길 원하셔서 매주 데려가고 제가 식사 준비해서 차려드렸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아무말없이 부모님의 냉담함과 무시도 견디고 심지어 장인이 진 대출도 일부 갚아주었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 쓴 이유는 이러저러한 태도와 방치로 보낸 시간이 길었고, 부모로서 무지하고 이기적이지만 당신들 삶엔 충실했던 부모님과 삼각형의 구도로 관계를 지탱해오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선 그마저도 이어지지가 않게 된 겁니다.
엄마는 아빠의 지병이 악화되는데도 저염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짠 김치와 밑반찬만 드리고 모든 옷들의 단추를 새로 다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시다 치매 펀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사를 하여 4시간 거리로 옮겨 새 알을 시작했구요. 매달 아빠 병원모시고 가고 안좋아자살 때마다 응급실로 검사로 자주 올라가도, 가서는 엄마가 늘어놓은 집청소와 냉장고 청소 쓰레기버리기로 늘 다툼을 했습니다.
출가외인인 니가 왜 내살림에 손대냐며 호일쪼가리도 못버리게 하셨지요. 치매판정이후호 싸움은 줄었디만 아빠는 엄마와 함떼 너싱홈에서 케어받길 원하셔도 죽어도 안간다는 엄마 고집에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 돌보셔야했던 안타까움이 큽니다.
아빠 계실 때야 아빠와 이야기하고 시시콜콜 일상을 알았지만, 치매로 고집과 돈에 대한 집착만 남은 엄마와는 대화가 어렵습니다. 그 좋아하던 교인들도 코로나로, 아빠 돌아가시니 그많던 모임도 사람도 다떠나고 장례식장에선 다들 엄마가 좀 이상하다 하시더니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아 기독교방송만 열심히 보고 계시네요.
제가 같이 살자 해도 교회 옆에서 산다고 한사코 절대같이 안산다 하셔서 혼자 지내십니다. 카메라로 가스타이머로 상태 지켜보며 있는데, 치매약도 보호사도 데이케어도 아무것도 안되고 혼자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시려하니 답답합니다. 더 커진 돈에 대한 집착과 현실인식이 사라져 계절감각도 없고 텔레비전 속 말씀만 남은 엄마. 요양원가면 오줌싸고 난리쳐서 집에 온다고 하십니다. 뇌는 줄고 인지는 떨어져도 신체는 건강하시니 막막합니다.
당신 통장의 돈과 집 돈이 있으니 이거 받으려고 나한테 잘해주냐시는데 참... 아무리 치매라도 이건 안변하는구나. 나는 엄마에게 이런 존재구나 싶어 다 놔버리고 싶습니다.
의무와 도리. 아빠에게도 지금까지 제 나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어떤 해답이 남아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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