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소개팅 주선한 후기 올려요

제 나이 40대 후반, 이런 일 해 본 지 20년은 된 것 같네요. 잘 한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한달 전쯤 아는 선배 오빠를 오랜만에 만났어요. 선배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나이는 50대 초중반 제 대학원 후배이고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화이팅은 부족한 스타일이라 학위도 정말 오래 걸려서 1년 전에 간신히 마쳤어요. 변변한 직업도 없으면서 술은 혼자 다 사고 다니는 스타일. 그래도 인맥이 좋아서인지 학위 따자마자 다행히 서울 괜찮은 대학에 바로 임용이 되었고요. 근데 전에는 늘 싱글이라도 씩씩했던 이 오빠가 저를 만나더니 너무나 간곡하게 소개팅 부탁을 하는 거예요. 진지하게 사귀어 볼 맘이든 하루 데리고 놀 맘이든 하다못해 호구로 보고 얻어 먹을 맘이든 어떤 여자든 다 만나 볼 준비가 되어있다고 여자 사람 전화번호만 달라고요.

도대체 누구를 어떻게 알아보나 고민하다가 제가 알기로 제일 마당발인 대학 동기 한명한테 연락을 했어요. 이 친구는 아직 싱글인데 왜 싱글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완벽주의의 끝판왕. 숨막히게 쎈 성격. 직장도 본인 스펙도 집도 차도 모든게 완벽해야 한다고 지난 20년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원하던 상위 1%에 들어간 친구. 끝없는 시술과 수술과 다이어트로 외모도 많이 개선되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인맥 관리도 철저하고요. 남자도 이상한 사람이랑 얽힐까봐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본 걸로 알아요. 혹시 소개시켜 줄 후배 없냐고 물어보려고 전화 했더니 대뜸 자기가 나가겠다는 거예요. 아주 단호하게요. 그래서 이건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자기가 일단 만나보겠다고 고집하더라고요. 

할 수 없이 저는 전화번호 알려주고 둘은 만났어요. 친구가 선택한 청담동 비싸고 핫한 레스토랑에서 만난다던데 세 시간 후쯤 문자 오더라고요. 당연히 좋은 분이지만 내 상대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었고요, 양쪽 다. 어휴 다행히 잘 마무리 지었다 싶었는데 일주일쯤 지나니 제 친구가 연락이 오네요. 사귀거나 결혼할 마음은 꿈에도 없지만 솔직하고 재밌는 남자, 술 고기 사달라고 전화하면 언제든 튀어 나올 것 같은 사람이라 계속 만나고 싶대요. 그래도 괜찮겠냐고 저한테 묻네요. 그거야 그 오빠가 결정할 문제니까 내 허락을 받을 건 아니지, 하고 얼버무렸는데, 그 얘기 들은 또다른 친구가 제가 제일 나쁘대요. 세상 모든게 용서 되는 남자와 세상의 아무것도 용서 못하는 여자를 연결시켜주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요. 전 좋은 뜻이었는데.

소개팅이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 저 정말 잘못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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