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임윤찬 관련글도 많이 올리고 암튼 클래식 덕후인데
긴 연휴에 시간이 많이 남아 제 오페라 덕질 이야기를 한번 써봅니다.
대한민국에 오페라 관객이 드물고 팬카페 같은게 없어 혼자 덕질하기 너무 힘들어서 ㅠㅠ 외로움에 질식할 지경 ㅠㅠ
궁서체로 쓰고 싶은 이야기이니
진지한거 싫어하심 뒤로가기 버튼 추천드려요.
그냥 일기 내지
고백?
자백? 같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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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오페라를 본 것은 열여섯살 때 였다. 발레를 좋아했던 친구를 따라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클래식 공연장을 드나들게 되었다.
이삼십대에는 마이클잭슨을 좋아했고 세상의 모든 쟝르의 음악을 골고루 들어보고 싶었다.
대중가수들의 콘서트를 많이 다녔다. 좋아하는 가수 뿐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가수들의 공연도 많이 가보았는데, 그 때의 나는 이렇게 많은 세상의 소리들 중 가장 좋은 소리는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감상이라기 보다는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소리의 탐험 같은거였다. 내가 왜 그걸 찾아야 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어떤 음악을 들어도 세상의 다른 한쪽에는 이 보다 훨씬 더 좋은 음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이후에 내가 오페라에 심취하게 된것은 어느 스핀토 테너에게 뻑이 갔기 때문인데, 그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페라는 마이크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내는 자연 그대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내가 피아노 바이올린 소리보다 사람이 내는 소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더 자연에 가깝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인간은 신이 만든 악기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지금부터 내가 양준모바리톤 덕질 시작한 썰 푼다. 때는 2018년 10월 25일, 그 때는 팬데믹 이전이다. 2018년은 내가 오페라에 한창 삘을 받아 연초에 겨울 휴가 2주를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여름 휴가 2주를 시드니오페라에서 잠자고 오페라 보고, 잠자고 오페라 보고 매일을 오페라에 빠져 있던 해였다.
일년 내내 매일 매일 다른 오페라를 공연하는 그들의 시스템을 눈물 나게 부러워하며, 오페라 공연이 1년에 몇 작품 뿐인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래도 잘 버틸 수 있을거라 위안하며 현생으로 돌아와 꾸역꾸역 월급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약간 우울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18년 10월 25일 우리 동네 모 초등학교 였는지 중학교 였는지 기억이 가물한데 어린 학생들이 학교 오케스트라 공연을 문예회관에서 하는데 거기에 양준모바리톤이 협연자로 왔다.
소프라노, 테너도 왔다. 나는 그때 양준모바리톤을 몰랐기 때문에 그를 보기위해 그 공연에 갔던게 아니었다.
우리 동네 학생들 오케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며 흐뭇한 엄마 미소로 듣고 있었는데 양준모바리톤이 무대에 나왔다.
첫곡이 우리 가곡 '청산에 살리라'였다.
첫 소절을 듣는데 '우와~~'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내가 듣고 있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었다.
단언컨데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마이크를 쓰지 않았지만 문예회관의 모든 공기와 벽과 천정에 소리의 진동이 일어났고, 내 마음에는 큰 지진이 났다.
지금껏 한국 가곡은 왜 맨날 금강산, 청산, 강물, 고향 타령 뿐이냐고 투덜 거렸던 나를 반성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런걸 전문 용어로는 '덕통사고'라고 한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국립오페라단이나 대구오페라하우스에 자주 캐스팅 되는 최고의 바리톤을 덕질하다 보니 그의 오페라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콘서트도 많아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그 소리의 정체를 모르겠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 분께 직접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의 정체를 알고 싶다.
그의 노래는 모든 순간 '선물'이었다.
누가 나한테 계속 선물을 주는데 받기만 하고 '고맙다. 감사합니다.' 말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게 맞는걸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감사는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좋은 소리를 찾고야 말겠다는 내 오랜 방황 내지 집착을 끝내준 데 대한 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