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제사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

1. 제사 음식은 남자가 했다?
-이 말을 지금 이해하기 쉽게 하면
친구들 계모임을 식당에서 안 하고 집에 불러서 하는데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계란 후라이와 라면 밖에 없는 딸내미한테 음식하라 시키는 거임
평소에 밥도 안 해먹는 남자들인데 어떻게 제사 음식을...
참고로 양반가 제사는 그 동네 공인 잔칫날이라 그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
밥도 안 해먹는 사람 손에 요리를 맡긴다 ....
그럼 남자는 뭐했냐고요?
조선 중기부터 기준으로 음식 재료 사다 날랐습니다
남자가 장 봐오면 그 재료로 여자들이 음식했습니다
그 장보러 가는 것 부터가 당시는 일이었죠
지금이야 원클릭 시대지만 그 당시는 십리는 산책이던 시절임
왕복 수십리 길을 걸어 장 봐다주고 떡 만들고 하면
여자들이 부침개 부치고 적 만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어찌되었든 남성도 요리에 동참한 셈이고
공평하게 남녀 일이 나뉘어진 것이지요
하지만 제사 음식을 남자가 했다 ...
그건 아닌거죠

그런데
사실 조상 제사는 보통 익힌 음식을 올리지만
산신이나 종묘대제 같이 위격이 높은 신들의 제사에는
생제물을 올립니다
즉 소고기 닭고기 생선을 그대로 올린다는 것
그 제물 손질은 남자가 했다고 봐야할 겁니다

2. 제사상은 검소했다?
앞의 글을 보시면 그게 얼마나 거짓말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제사=잡안 위세 자랑 날인데 그걸 검소하게 할리가 ...
유학자들이 예법서에서
거듭거듭하여 에이에이 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듭거듭하여 에이에이 안 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조선 시대 지속적으로 제사상은 화려해졌고
유학자들이 계속 제동을 걸었지만 실패했다 정도로 보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저렇게 화려한 제사는 기제사 시제사 묘제 등이고
명절 차례는 그냥 제사 축에도 못 들어가는 간단한 제사였습니다
고로 명절 차례는 간단히 인사만 해도 됩니다

3. 부침개는 사찰 음식이라 유교 제사에 안 썼다?
애초 조선시대에는 궁중요리 사찰요리 개념이 없었습니다
맛있다하면 벤처마킹해서 먹던 겁니다
다만 유교 예법서에 우리가 먹는 부침개 형태의 음식이 제사상 상차림 목록으로 안 나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불교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아는 부침개가 생각보다 늦게 나오는 바람에 유교 예법을 뚫을 기회를 찾지 못한 것 뿐인 겁니다
사찰은 거기에 자유로운데다 신도들 입김에 좌우되는 면이 크니 그냥 넣은 것 뿐입니다

결론은
1. 조선 시대에도 제사 음식은 여자가 만들었음
2. 화려한 제사상은 늘 있었음
3. 부침개는 올라가도 상관 없는 음식

이 정도 된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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