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새학기 문구점에 따라오는 아버지들의 유형



1. 가족과 잘 어울리며 가족을 리드하는 자상한 젊은 아버지


그야말로 젊은 가장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아버지인데 젊고 외모도 좋고 아내에게 다정하고

아이들에게 자상하여 남편으로서의 역할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며

가족들은 화목하며 바라보고 있으면 (이미 결혼을 했음에도) 아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버지로서 물건을 사고 나면 예의바르게 주인(나)에게 인사를 잊지 않고

무거운 짐을 자신이 들고 아내를 에스코트하며 문구점을 떠남


떠나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문구점 주인(역시 나)는 오랫동안 바라 봄

해마다 세 명 정도는 다녀가는 것 같음.

다들 인물도 좋고 옷도 단정하게 잘 입음 많지는 않음


2. 가족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떠다니는 섬같은 스타일의 아버지(존재감 없는 유형)


가족과 함께 들어오기는 했는데 함께 다니지 않고 혼자 다님. 아이들도 아버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엄마만 따라다님. 네 명이 들어오면 세 명이 똘똘 뭉쳐 다니고 아버지는 혼자 다니는데

마칠 때까지 아무도 아버지를 한번도 찾지 않음. 아버지는 혼자 다니며 구경을 하는데

주로 비비탄총같은 걸 유심히 보고 다님. 그러다가 가족이 물건을 다 사면 카운터에 따라와

뒤에 서 있는데 나갈 때 짐도 들고 가지 않음. 가족들은 아버지가 없는 것 처럼 행동함


3. 존재감 있는데 안 좋게 존재감 있는 아버지


아버지가 물건 사는 걸 간섭하는데 주로 못 사게 함. 집에 있는데 왜 사느냐는 말을 계속 함.

아이들이 위축되어서 뭘 산다는 말을 못 하고 엄마도 말을 못 함. 죄다 못 사게 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빙빙 구경만 할 뿐 뭘 사지를 못 함. 그러면서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함.


자기 학교 다닐 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래서 자기가 공부를 잘했다는 건지 못 했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공부를 잘 했을 것 같지는 않음. 아이들은 샤프도 못 사고 지우개도 못 사고

딱풀도 못 삼. 무조건 집에 다 있다고 하고 아버지 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이런 거 하나도 없었다는

말을 반복해서 함. 


겨우겨우 집에 없는 거 몇 개만 사고 아이들은 기분 안 좋고 엄마도 울적해서

문구점을 나감. 예전에는 문구점 주인이 아버님. 신학기잖아요. 친구들은 모두 새 거 가지고 와요.

이렇게 거들기도 했는데 연차가 높아지고 사는게 고단한 문구점 주인은 


요새는 그런 대사를 하지 않음. 



4. 3번의 변형 버전


신학기 문구를 사러 온 아이가 <한정판 포켓몬카드>를 발견했는데 이 한정판 포켓몬카드는 요즘 정말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물건임. 몇 달만에 5통이 들어왔는데 하루만에 다 팔리고 진짜 몇 개 안 남음.

부모님들은 이걸 사 주려고 매일 전화하시는 분도 있음. 아이는 이걸 보았고 너무 놀랐음. 아버지에게

이걸 사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이게 무엇인지 모름. 빨리 몇 개 사줘야 되는 물건임.

근데 아버지는 갑자기 문구점 한 구석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수학공부방>을 오픈함.

초등학교 입학도 안 했는데 두자리수의 덧셈 문제를 내놓음. 포켓몬카드 3개 가격 덧셈을 하는 건데

두 자릿수 덧셈 앞에 아이는 대혼란에 빠짐. 아버지는 삼십에 십이를 더하라는데

사람은 많고 포켓몬카드는 몇 장 안 남았는데 아버지가 두 자릿수 덧셈을 시키는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짐.

누가 와서 가져가 버리면 눈 앞에서 포켓몬 카드가 사라지는데 아버지는 삼십에 십이를 더하라고 함.

듣고 있는 내가 울고 싶음. 아버지는 일단 삼에 일을 더하면 얼마냐고 하고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사라고 대답하는데 아버지는 이게 십단위니까 삼심에 다시 십을 더하라고 함

아이는 정신줄을 놓을 것도 같은데 천재적인 힘을 발휘해 사십이라고 말함.

되었다! 주인이 기뻐하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다른 문제를 냄. 그러면 또 몇십얼마에 몇십얼마를 더해보라고 함

나는 아이가 울지 않고 뛰쳐나가지 않고 십단위 덧셈 못하는데 사람 그렇게 많은데서 정답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대치하고 있는 국면을 울고 싶은 심정으로 내내 지켜보고 있음

저렇게 해놓고 포켓몬카드 안 사주면 진짜 내가 안 참을 거라고 생각함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아버지와 문구점에서 하는 수학공부방>은 끝나고

영혼마저 탈탈 털린 아이가 남은 포켓몬카드 다섯개를 쥐고 나타남. 아버지가 계산을 함.

잘했어. 문구점 주인이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칭찬함. 아이는 소중한 포켓몬카드를 꼭 쥐고 문구점을 떠남

포켓몬 카드를 샀지만 사는 과정에 너무 진을 다 빼버려서 아이는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음. 마음이 아픔.


5. 존재감 있는 경우이며 혼자 오는 아버지


준비물이 적힌 종이를 들고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온 아버지 왜 혼자 왔는지는 모름

아버지는 물어보면 될 텐데 물어보면 되는 건지를 모르고 계속 문구점안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며

준비물을 하나도 못 찾는데 그 동안 아이 두 명은 엄청 많은 장난감을 골라서 바구니에 계속 채움

아버지는 거칠게 아이들을 제재하는데 아이들은 그다지 겁먹지 않음

지켜보던 문구점 주인(나)은 드디어 나서야 될 때라고 생각함. 아버님. 스케치북은 저기 6번에.

아버지는 기뻐하며 스케치북을 찾아옴. 아버님. 준비물 뭐 찾으셔야 되십니까. 유치원인가요. 종이를 저에게.

아버지는 흔쾌히 종이를 문구점 주인에게 넘기고 자기 때는 이런 게 없었는데 요새는 준비물이 너무 많다

이게 다 돈이 얼마냐 우리 때는 하며 말하는데 문구점 주인이 아버님 우리 때도 이런 거 다 썼다며

아버님 저보다 어려 보이시는데요 하며 아버지 말을 못하게 하고 물건 다 찾아 드리는데

아버지는 기뻐하며 계산하러 왔다가 문구보다 더 많은 장난감에 놀라지만

아들들이 고른 장난감을 별 말 하지 않고 다 사주고 문구점을 떠나 아이들도 문구점 주인도 해피엔딩



어머니편. 


오늘 있었던 일인데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자 어린이인데 아주 예쁘고 의젓했어요.

입학식날 준비물과 입학한 후 일주일 뒤 준비물이 각각 적힌 종이를 들고 왔는데

이 학교는 리듬악기세트와 소고가 준비물이었어요. 리듬악기세트와 소고를 본 어머니가

너무 비싸다고 탄식했어요. 남편에게도 말하고 그걸 아이가 듣고 있었어요. 제가

20프로 할인이 된다고 이야기하자 계산을 하러 왔고 계산 중에 마음이 바뀐 어머니가

리듬악기세트와 소고는 사지 않겠다고 했어요. 아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러면

리듬악기세트와 소고는 어디서 살 거냐고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고

아이는 엄마에게 <인터넷으로 살거냐><오늘 인터넷으로 주문할거냐>고 물었어요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엄마는 또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예비초등학생은 또 엄마에게 <그러면 다있소에 갈거냐>고 물었어요

엄마는 아이에게 <일단 다있소에 가보자>라고 했어요

엄마의 걱정은 어른의 걱정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아이의 걱정. 학교에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할까 하는

아이의 걱정이 느껴져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문구점의 문을 나서며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다있소에 없으면 오늘밤에 인터넷으로 살 거야?>


다있소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리듬악기세트와 소고. 아이가 걱정없이 오늘밤 잠들었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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