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를 오래 했는데 최근애는 학원 일도 다시 시작한 지 좀 됐어요.
비만 줄기차게 오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그 비를 뚫고 꿋꿋이 학원 온 모든 아가들 예쁨)
방학이 끝났다는 건 중간고사가 다가온다는 거죠.
방학에 열심히 해서 중간고사 범위는 진도를 다 끝냈어요.
이제 진도를 조금 더 빼서 기말용 여유를 만들어 두든지
아니면 본격적으로 시험 대비 문제풀이 지옥에 빠져야 하는데…
여름 끝에 지쳐 있고, 개학해서 체력은 달리고… 아이들이 지쳐 하고 있어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
(제가 만든) 퀴즈대회를 열었어요.
(원래는 학원 처음 출근한 해에
어색함을 지우려고 실시해 봄)
고등학생들이고(고3 아님) 두 반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연합 퀴즈대회를 연 거죠.
아이들은 설레 했고 저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약간 다른 이벤트가 기대됐지만, 내용은 철저히 내신 준비입니다 ㅋㅋ
아이들도 알고 있었어요. 그냥 공부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런데도 설레서 너무 좋아하더라고요((…왜지;;;;) 얼굴까지 상기되면서.
퀴즈대회 전 수업 때, 대회 예고를 하면서
지금까지 진도 끝낸,시험 예상 범위 전체 철저히 암기해 오기
(대회라는 특성상 복잡한 풀이는 할 수 없고
아무래도 암기 위주로 하게 됨)
를 시켰죠.
그리고 저는 코스트코 장바구니 사이즈의 폴리백에 가득 차는 양의
각종 과자, 젤리, 에너지바 등등을 주문했어요.
저를 골치아프게 한 건 퀴즈 룰 짜기와 문제 내기…
이게 진짜 어려워요 ㅠㅠ
다행히 예전에 짜 둔 룰이 있어서 그걸 조금 변형했어요.
총 3라운드
1 라운드 : 팀 대항전 - 팀을 나눠 앉고
제가 문제를 읽어 줍니다. 답을 알면 재빨리
정답! 외치고 손을 들어서 답을 말해요.
틀리면 다른 팀이 기회를 가져가고
부상이 걸려 있는 문제가 군데군데 숨어 있으며
(부상 : 감자칩, 음료 등 ㅋ)
수업을 엄청 열심히 들은 학생만이 맞힐 수 있는 문제에 높은 점수가 걸려 있어서 그걸 맞히면 역전이 가능.
(예 : 교재 내용만 맞히는 게 아니라
그걸 설명하기 위해 선생님(저)이 사용했던 비유가 뭔지도 맞혀야 함-
원성이 자자할 거라고 생각하며 키득거리며 문제를 냈는데
이걸 단번에 맞히는 놈들이 있어서 더 놀람 ㅋㅋ)
점수를 합산해서 승팀을 정해요.
2 라운드 : 팀 대항전 - 스피드 퀴즈
전에는 제가 스케치북에 문제를 써서 들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노트북 활용.
문제를 보여 주면, 설명자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은 문제를 볼 수 있지만
칠판을 등진 술래는 문제를 볼 수 없어요.
설명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명하면 그걸 듣고 술래가 맞히는 방식.
문제 수를 합산해서 승팀을 결정하는데
승팀은 숙제 면제, 패팀은 숙제를 왕창 받는 방식!
3라운드까지 있었어요.
이건 도전 골든벨 방식,
화이트보드가 없으니까 이면지를 활용했어요.
2라운드까지 나온 단답형 위주 문제들을 탈피해
서술형 문제들까지 냈죠. 확실히 어려워하더군요.
와… 근데 그렇게 열심히 할 줄이야 ㅋㅋ
에어컨 온도를 내리다 내리다 17도까지 내렸는데도 아이들이 열기를 얼마나 뿜어내는지
교실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게 실시간으로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 건 처음 봤어요.
나중엔 27도를 찍더군요 ㅋㅋ
스피드 퀴즈는 70문제를 내 갔다가 문제가 모자라서
(그것도 넉넉히 낸 건데!)
중간에 제가 급하게 30개 더 냈는데 결국 마지막 한 명은 풀 문제가 없어서, 문제 푸는 자리에 못 앉아 봤어요.
와 백 개를 풀다니;;;
범위 내에서 더 낼 문제가 없었어요!
야단법석 - 조용…
정답!
우우우우우
그건 불공평해요!
조용…
어 이거 아니에요? 아 뭐지 뭐지?
와하하하하
이런 소동 끝에
늘 똘똘했던 여학생이 전체 1등을 해서 치킨 기프티콘을 받아 가고(반전이 일어나지 않았음ㅜ)
그 다음 학생이 아이스크림 파인트를 받고
그 다음 학생들이 버거 세트를 받고
그 다음이 감자칩, 젤리…
그리고 아무것도 받지 못하면 서운하니까
초콜릿 미니바와 과자를 다 풀어서 전부 똑같이 나눠 가지고
숙제를 하게 된 패팀 구성원은 ‘너무 슬퍼하지 마’ 위로퓸으로 맥스봉 소세지를 받고
그러고 시끌시끌하게 집에 갔답니다
아이들이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중간고사 예상범위 전체를 정말 구석구석 먼지도 안 남도륙 한 바퀴,
싹 다 훑었어요 ㅋㅋ 아마 다음 주부터 문제풀이 하면 좀더 잘 하겠죠…?
그러기를 기대하며
저는
저도 재미있긴 했지만 (애들 웃는 얼굴 보는 재미)
와 너무 힘들었어요. 뭔가 탈탈 털린 기분.
애들이 재미있어 할지, 공부시키는 것일 뿐인 걸 눈치채지 않을지 걱정하다가
그 전날은 꿈까지 꿨다니까요. 학원 갔는데 문제 낸 걸 집에 두고 가고
상품 준비한 게 베송이 안 오고 그런.
하루 지났는데 여운이 남아서 끄적여 봅니다.
(혹시 학부모님들이 듣고 안 좋아하시진 않았겠죠…?)
아이들이 계속 이렇게 흥미 잃지 않고 공부했음 좋겠어요. 아… 전 이제 씻고 발 뻗고 잡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