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97세 우리 할머니 이야기

먼저 죄송해요 ㅠㅠ 제가 많은 분들이 연금이나 노후 조건에 관련해서 궁금해 하시는 거 같아서 원 글 에다가 조금 더 추가해서 수정하려고 한 게 지워졌지 뭐에요. ..

저희 할머니는 팔순에 혼자 되셨어요.
자식은 다섯이구요 93세까지 정정하게 혼자 사셨고 3년 정도는 출퇴근 도우미의 도움으로 식사 챙기고 약 드시고 하셨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잠은 혼자 주무셨으니 혼자 지내신 거나 마찬가지죠.

사실 저는 친손녀라 고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 더 내밀한 것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희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가 대한민국 탑 레벨의 고부관계 일거라 자부하기 때문에... 사실 이런 부분도 소소하게 인격을 드러내는 부분이지요 며느리들과 트러블 없이 잘 지내셨어요.

할머니는 진짜 전화를 잘 안 하셨어요 할 제가 유학 중에 할머니한테 전화를 자주 드렸는데도 몸 어떠시냐고 물어보면 항상
백년가까이 썼는데, 늙으면 원래 다 아픈 거다. 그런 거 뭐 광고하고 다니냐 ㅎㅎ 하셨어요

부처님 말씀 워낙 좋아하셔서 집에 놀러가면 오래된 오디오에 금강경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절에서 전국 사찰 돌아다니며 기도하는 사찰순례를 정말 오래 하셨어요.
제가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한 번씩 밖에서 만나서 외식하는 것도 즐기셔서 강남으로 나오라고 하시면 지하철 타고 오시기도 하셨어요 90까지는 그러셨던 거 같아요. 세상에 이렇게 세련된 할머니가 어딨냐고 막 손주들이 호들갑 떨면 니네 도 하는데 내가 왜 못하냐 하시면서 웃으셨어요.

김장철이 되면은 맨날 몰래 김장을 해서 한 명 한테만 연락을 해요 주로 막내딸인데요ㅋㅋ 필요한 사람 있으면 가지고 가라구 단톡에 올라옵니다. 그럼 또 다들 득달같이 가서 가지고 가고 용돈도 드리고 식사도 한 끼 하고 오구요 그렇게도 잘 먹여 주셨어요. 유학 중인 손주 손녀들한테 가끔씩 마른 반찬도 보내주시고 오이지도 보내주시고 그랬었구요ㅎㅎㅎ 다들 할머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마지막 2-3년 정도는 날 잡아서 김장하는 게 고모와 작은 엄마 큰 엄마들의 일이었어요. 번개김장으로 몸상하실까봐 배추 주문을 엄마가 직접. ㅋㅋ 외식도 너무 좋아하셔서 명절에는 외식도 많이 했네요. 제사 같은 거는 할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절에 모셔서 잡일이 없었어요.
워낙에 말수가 적으시고 조용하신 분이셔서 가끔 고모인 딸도 속을 모르겠다고 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단정하시고 다른 사람한테 치대지 않으시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자식들한테 전화도 정말 많이 안 하시고 그러니까 자식들이 되려 열심히 돌아가면서 전화했던 거 같아요. 저희 엄마만 해도 며느리지만 저녁먹고 할머니한테 전화 드리는 거 진심으로 했었어요. 하루 잘 지내셨는지 별일 없으신지...하지만 워낙 말수가 없으셔서 간단한 통화가 부담없으니 가능했었던 일인 것 같아요. 모르긴몰라도 하루에 전화 엄청 받으셨을거테요
마지막 삼년 남짓 정도는 집안 일 하시기가 버거우셔서 출퇴근 도우미 부르셨는데 세끼 챙겨주시고 약 챙겨주시고 간단한 소일하시게 되어주시는 정도였어요. 이때부터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으셨고 간단한 산책 정도 명절에 한 번씩 멀리 모시고 나가서 바람 쐬는 정도였어요 그런데도 답답하다 내가 옛날에는 어쩌고 저쩌고 말씀도 안하시고 그냥 집에서 티비 보시면서 도우미아줌마랑 얘기도 하고 무탈하게 지내셨던 거 같아요. 다 마음 수양 덕분 인 거 같구요.
마지막에 원인 없이 열이 나서 입원하시고 퇴원하셨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입원하셨는데, 폐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요양병원으로 가시시게 된 것이 한 사개월... 주말이고 주중이고 많이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눈빛으로만 꿈뻑 꿈뻑 소통하셨던 마지막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우리 할머니가 전혀 불쌍하다.. 늙는 것에 대한 회한의 느낌을 가지는것이 그냥 마지막을 잘 담담하게 정리하는 느낌이셨어요. 누구나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잘 살다 가신다... 집에서 돌아가고 싶으시다는 작은 소원이 있으셨지만 그마저도 인생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라고 하시기도 하셨고요. 개인적으로 오래 살아 주시기 바라기도 했지만 병원은 워낙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원하시는 만큼만 계시고 천국 가셨으면 좋겠다 생각도 들더라고요.

오래되고 낡았지만 빚 없는 자가 한 채, 많지도 적지도 않은 연금 , 정신적인 중심이 되어주는 종교 생활. 의존적이지않으면서도 적당한 거리가 있는 자녀들의 사랑.
이게 눈부시게 풍요롭던 할머니의 노년이었습니다. 아직도 꽃나무를 보면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며 혼잣말해요. 보고싶다구요. ㅎㅎ
그럼 아마 그러실거에요. 뭐가 보고싶냐, 너네나 맛있는거 많이먹고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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